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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목마성)| 대연동

지금의 비룡산 일대, 당곡, 석포, 우암 앞바다까지 걸쳐 언제 축성되었는지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성이 있었는데, 옛날에 이 성터안에서 군마를 방사하여 길렀다 하여 ‘마성’이라 불러왔다.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동래현 남쪽의 석포목장에 말이 232마리, 절영도(현 영도)에 목우 276마리, 오해야항1) 목장에 793마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동래현의 목장조에는 ‘석포에는 나라에서 기르는 말 419마리를 방목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석포 목장이 바로 동래부지에 기록된 대연동 석포에서 용호동 입구 일대다. 따라서 『경상도속찬지리지』가 편찬된 1469년에는 석포목장에 말이 232마리가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1481년에 발간한 『동국여지승람』은 “동래현의 남쪽 23리에 있는 석포에 석포목장2)이 있다”고 하였으나 1740년 동래부지가 간행될 때는 목장성이 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동래부지에서 성곽을 말한 자리의 기록을 보면 목장성이 나온다. 그 목장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목장성은 세 곳에 있는데 하나는 엄광산 산록(엄광산 산록 : 현 사하구 엄궁동 강변이 됨)에서 부산 범천산(범천산: 현 동구 범냇골 바닷가가 됨)까지의 길이 15리요, 하나는 옛 다대 강변에서 석성산 산록(석성산 산록: 현 남부민동 바닷가)까지의 길이 10리요, 하나는 황령산 산록에서 남천 강변까지 길이 15리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졌다.”


이 기록에 의하면 마성은 『경상도속찬지리지』가 간행된 1469년에는 있었으나 『동래부지』가 편찬된 1740년에는 그 목장성이 없어진 것 같다.


따라서 지금의 대연동과 용당 및 용호동 일대(석포(石浦) 마을 중심)는 조선조 초기는 초원지대가 되어 말을 기르는 목마장으로 말들을 가두어 두기 위한 성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석포목장과 오해야 목장을 구분하기 위하여 마성을 쌓은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1)오해야항은 『대동여지도』에서 보면 용호동에서 오륙도가 있는 반도의 해안 일대로 표기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제23권에 의하면 봉수대를 설명하는데 현 승악산 일대로 기록이 되어있다.

2)『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남쪽 25리에 기름진 땅에 풀이 우거져서 말 치기에 적당하므로 단종 원년에 목장을 쌓았는데 둘레가 90리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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