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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뚝과 동제(洞際)| 용당동

1970년 초까지 용당의 아랫마을 동편에 존재했던 땅뚝은 바다에서 밀려 온 자갈과 모래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구릉으로, 동서로 약150m, 남북으로 200m쯤 되는 타원의 숲 지대였다. 이 곳에는 마을이 토속신인 땅뚝 할머니를 모신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한 평 남짓 허름한 집으로 주위는 돌담으로 둘러졌고 남쪽으로 사람 하나가 드나들만한 입구가 틔어 있었다.


땅뚝에는 300년도 지난 아름드리 포구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가려 한 낮에도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당집 주위는 늘 침침했다. 현재까지도 이 당산나무들은 당집과 함께 역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들의 틈 사이로까지 (작은 식용 열매), 어든밥, 얼음 등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많아 아이들을 불러 들였다. 여름에는 대나무로 포구 총을 만들어 포구 알로 총싸움을 했다. 땅뚝은 용당 사람들에게는 지성소인 동시에 경외의 장소였다. 그 곳은 언제나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으며 한 가운데 자리한 당집은 그 신성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원하는 장소이면서도 냉기를 느끼게 했다. 당집 곁을 지나는 농사꾼이나 나무꾼은 머리를 숙이고 종종걸음을 했다. 당집은 원래 초가였으나 기와로 바꾸었으며 이 때 시주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현판이 외벽에 붙어 있었는데 당집을 옮길 때 어느 동민이 떼어내어 버렸다고 한다. 땅뚝이란 당산제방(堂山堤防)이란 뜻이다. 땅은 ‘당의 변음’이고 둑은 ‘제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인접한 불이 모래로 된 자연 제방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쉬울 것이다.


땅뚝이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유엔기념묘지를 조성할 때 자갈과 모래를 퍼 가면서였고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당집 앞에 교회가 들어서고 인가가 늘면서 점점 쇠락해 갔다. 결국 1970년 초 동명목재 부지 확장으로 당집이 이전하면서 땅뚝은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당집의 주인은 최초의 입주자로 알려진 나씨 할머니이다. 그러나 마을 토박이인 이성찬(李聖贊) 씨에 의하면, 나씨 외에도 고씨, 황씨 할머니를 같이 신주로 모시고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일제 말기 때 동제의 제관이었던 분의 이야기에 의하면 당집 문을 여니 작은 탁자 위에 나무로 된 위패 받침이 놓여 있었는데 흰 종이에 먹 글씨로 ‘신선(神仙)’ 두 자가 적혀 있었고, 다른 시설물은 없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는 것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 풍어를 빌고 집단적 생존을 저해하는 자연적, 사회적 재해와 약을 물리치기 위함이었다. 동제의 절차는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동제를 지내기 전에 마을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실한 사람을 가려 제관으로 뽑았는데 제관이 되면 제사를 앞두고 일정 기간 매일 목욕재계하고 정신을 맑게 가지며 음식물을 가려서 먹고, 문밖출입을 삼가며 제사 일주일 전부터 당집 주위와 자기 집 앞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깔아서 외부인의 근접을 경계했다. 제관의 수칙은 동제 후에도 지켜야 하는데 그 해가 다 갈 때까지 근신해야 하는 것이다.


용당의 동제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 마을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10시경 시작하는데 먼저 당집에 제를 올리고 다음으로 거릿대 당산제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바닷가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제사 순서는 제물을 진설하고 술잔을 올리고 삼배하고 축문을 낭독하고 첨작을 하고 소지로 이어진다. 축문은 제관이 올리는 축원으로 대신하는데 제수를 올리는 사연을 아뢰고 재수와 평안, 풍년과 풍어, 무사와 안택 등을 기원한다. 소지 때 재가 높이 오를수록 그해의 운세가 길하다고 한다. 당집에 이어 거릿대 당산에 가서 제를 올리는데 절차는 앞에서 한 것과 같다. 거릿대 당산은 본동 경로당의 남서쪽 10미터쯤 떨어진 길가에 있었는데 70년 이 후 최모씨의 집이 들어섰다. 당집과 거릿대 당산의 차이점은 그 신성(神性)에 있다. 당집의 신격이 신주(神主)인데 비해 거릿대 당산의 신격은 높이가 다섯 자쯤 되는 한 그루의 구부정한 소나무였다. 즉 소나무는 신목(神木)이 되는 것이다. 즉 주신(主神)으로 받드는 당신(堂神)은 나씨 할머니라는 인간에게 영성을 부여하여 신격화한데 비해 거릿대 당산신은 터를 지키는 서낭신인 것이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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