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정소식

home 부산남구신문 > 구정소식
  • facebook
  • twitter
  • print
구정소식 ("초라한 항일투사〈안중근 의사 여동생 안성녀〉 묘소 저희라도 돌봐야죠")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초라한 항일투사〈안중근 의사 여동생 안성녀〉 묘소 저희라도 돌봐야죠"
작 성 자 문화체육과 등록일 2017/09/26/ 조   회 528
첨부파일 안성녀여사묘소참배.png (557 kb)



 BIFC 내 보험설계사들 한가위 앞두고 벌초·참배
 정부 서훈 못받아 백운포 천주교묘역 40년 넘게 방치
"가족 말고 이렇게 많은 분들 방문은 63년 만에 처음"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묘소가 백운포 기슭에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 우연히 알았습니다. 추석도 다가오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직원들과 함께 왔습니다."
 목장갑을 끼고 낫질을 하던 농협생명 부산하나지점(BIFC 8층) 김지연 지점장은 "항일투사의 묘가 너무 초라해 깜짝 놀랐다"고 탄식했다.
 지난 19일 용호동 천주교공동묘역에 있는 안성녀 여사 묘소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볐다. 농협생명 소속 보험설계사들과 남구청 직원, 남구의회 의원, 광복회 회원 그리고 남구에 사는 유족 등 10여 명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벌초와 참배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안 여사의 친손자이자 광복회 부산 남부연합지회장을 맡고 있는 권혁우(73·대연동 거주) 씨는 "할머니 돌아가신 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안 여사의 묘는 남구재활용선별장 입구(남구국민체육센터 뒤편)에서 250m 가량 떨어져 있다. 봉사자들의 낫질에 웃자란 잡초가 베어지자 작고 초라한 봉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 여사는 오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서거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가족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35년 간 연해주와 만주 등지를 전전하다 광복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이후 6·25 발발로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1954년 4월 73세 일기로 사망했다. 처음 영도구 청학동에 묘를 세웠다가 1974년 이곳 용호동 천주교묘역으로 이장했다.
 용당동에 위치한 `영웅안중근의사교육문화재단 부·울·경 연합회' 윤병하 회장은 봉사자들 앞에서 "안 여사님은 만주에서 독립군 의복을 만들고 군자금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공식기록(수사기록이나 판결문 혹은 사진)이 발견되지 않아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립현충원으로 유해를 옮기지 못하는 이유다.
 40년 넘게 사실상 방치되어 오던 묘소는 참다못한 남구청이 지난해 자체 예산을 들여 시멘트 묘비를 없애고 항일 기록을 새긴 오석의 묘비와 상석을 새로 설치해 그나마 나아졌다. 남구는 향후 봉분도 정비할 예정이다.
 권 지회장은 "언젠가 어느 기업인이 찾아와 할머니 묘소를 새로 단장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얼마 안 있어 현충원으로 모실 줄 알고 사양했다"며 "이런 큰 불효를 저지르게 될지 몰랐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목록

만족도조사 ㅣ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편의성에 만족하셨습니까?

  • 5점(매우만족)
  • 4점(만족)
  • 3점(보통)
  • 2점(불만)
  • 1점(매우불만)

등록하기

  • 담당부서 :    
  • 담당자 : 구정소식 담당자
  • 전화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