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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들의 聖地 … 살아남은 우리는 늙어도, 그들은 늙지 않으리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10/04/ 조   회 158
첨부파일 4-2cw50.JPG (5960 kb)

영웅들의 聖地 … 살아남은 우리는 늙어도, 그들은 늙지 않으리

영웅들의 聖地 … 살아남은 우리는 늙어도, 그들은 늙지 않으리
-로렌스 비니언의 시 `전몰용사를 위하여' 중에서

77주년 `유엔의 날' 앞둔 UN기념공원 70년 변천

 전쟁이 나면 전사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상군 지원 외에 의료지원군까지 22개 국가가 참전해 전사자들이 속출하자 유엔연합군의 묘소 조성이 필요했다. 바다가 보이는 당곡마을 앞 언덕을 묘소로 정하고 공병부대를 투입해 공사를 진행하였다.
 유엔묘지 조성 당시 동문중학교 교사가 작업반장을 맡았다. 또 서봉출씨는 이곳에서 일해 번 돈으로 동아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중에 남성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은퇴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봉희씨는 부산대학교 의대에 진학해 이비인후과 의사로 생활하며 국제와이즈멘 총재도 역임했다. 이들은 그때의 이야기를 필자에게 생생히 증언해주었다.
 묘지에서 1㎞ 정도 떨어진 우암역에서 시신이 내려지면, 트럭이나 앰블런스에 실어 유엔군 시신은 당곡의 묘지로, 북한군 시신은 평정산 정상(옛 남구예비군 훈련장)으로 옮겨 가매장했다. 북한군 무덤은 그 수가 너무 많아 당곡마을 가까이까지 조성되었다가 휴전협정이 되면서 북한으로 인계되었다. 유엔군 시신은 유엔기념공원에 도착하면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과 각종 지병 등을 검사했다. 놀랍게도 불과 20세 전후의 젊은 병사들이 오늘날과 같은 성인병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시신이 많아 지퍼백이 부족하면 군용담요에 싸서 시신을 묻었는데, 가난한 피란민들은 밤중에 그 담요를 벗겨 겨울에 아이들 옷으로 만들어 입혔다. 시신이 오면 부검을 한 뒤 가매장을 하고 다시 파내어 말렸는데 서풍이 부는 날이면 1㎞ 정도 떨어진 용소마을 사람들이 악취에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진은 논과 밭으로 된 작은 동산을 평평하게 정비해 지금의 중앙상징구역과 주묘역을 만들고 있다. 중앙상징구역에 유엔군 참전국 국기는 세워두었으나 묘소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묘지 조성의 초기임을 알 수 있다. 주묘역 아래는 야산으로 되어 있고 용소마을로 가는 산길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조각공원의 자리다. 주묘소 아래 추수한 논과 밭은 현재 대천초등학교 맞은편의 수목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진 상단에 있는 마을은 당곡마을로 대연동에서 4번째로 큰 마을이다. 유엔묘지 조성으로 많은 집과 논밭이 수용되었으며 지금까지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 주묘역 옆 건물은 묘지를 조성하는 관리소와 부검장이다. 이 건물들 옆에 보이는 몇 채의 주택은 당곡마을 사람의 집으로 1970년대 수용돼 현재 공용주차장으로 되어 있다. 마을 옆 숲과 인근의 땅은 현재 부산문화회관이 되었으며, 오른쪽 숲은 감 과수원과 불곡사가 있던 곳으로 현재 소강당과 영빈관 아래쪽이다.
 사진의 오른쪽 중앙에 보이는 길은 석포마을에서 곧장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당곡마을과 갓골을 지나 용당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소쿠리터를 허물면 안 된다'는 전설을 지켜왔던 용당 마을사람들을 회유를 해 만들었다.
 요즘도 유엔기념공원에 가면 부산문화회관과 경계에 측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1955년 무렵 심은 나무로 마을사람들이 키재기를 하며 보냈는데 여전히 건재한 사실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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