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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베일에 가린 세계 평화의 상징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19/05/02/ 조   회 771
첨부파일 캡처.PNG (2847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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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베일에 가린 세계 평화의 상징

40여년 베일에 가린 세계 평화의 상징


1975년 10월 24일 제막 불구
조각가 신원 4년 전에야 밝혀져
건립비용·의미 등은 여전히 `미궁'

 대연동 유엔교차로의 유엔참전기념탑은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지만 기념탑이 품은 의미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유엔참전기념탑은 1975년 6월 10일 착공에 들어가 유엔 창설 30주년이던 그 해 10월 24일 제막식을 가졌다. 기념탑 높이는 12.5m. 청동 지구본 밑으로 전투지원 16개국을 상징하는 16개의 군인 동상과 16개의 직각 및 사선 기둥이 지탱하고 있다. 청동 지구본 아래에는 16개국의 무장한 등신대 군인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군복이나 소총 등은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되었다. 전시 때 호주군은 탄창이 위로 나있는 독특한 형태의 오웬(Owen) 기관단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곳 호주군 조각상에 그 기관총을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념탑은 홍익대 미대학장을 지낸 김찬식(1932∼1997) 조각가가 설계·조각했다. 서울 4·19기념탑, 마산 3·15의거탑 등 역사성 띤 작품들을 주로 만든 한국 현대조각의 1세대 작가이다.
 하지만 유엔참전기념탑이 김 조각가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은 4년 전에 불과하다. 기념탑 제막은 남구청이 개청된 지 채 한 달이 안돼 열려 기념탑 관련 자료를 챙길 여유가 없었던 데다 기념탑 건립 주체인 부산시마저 조각가에 대한 자료를 유실해 `참전기념탑을 누가, 무슨 의미로 설계했는지'는 40년간 베일에 가려 있었다. 남구청이 오랫동안 기념탑의 조각가를 찾아 나섰고 지난 2015년 10월 마침내 원로조각가와 유족 증언 등을 근거로 그의 작품인지를 밝혀냈다. 그러나 스무 해 전 조각가는 숨졌고 관련 자료도 모두 증발해 기념탑의 정확한 의미와 상징성은 알 수 없었다.
 우선 건립비용부터 오리무중이다. 제막식을 보도한 45년 전 신문기사는 제각각이다. 1975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는 기념탑 건립비용으로 2억800여만원으로 보도했고, 같은 날짜 매일경제는 2833만2000원, 국제신문은 3000만원으로 달리 적고 있다.
 기념탑을 지지하는 16개의 방상형 기둥의 의미도 불명확하다. 16개의 기둥 길이가 모두 다른데, 일각에서는 기둥 길이는 희생자가 많은 국가에 비례해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맞지 않다. 길이가 가장 긴 기둥은 태국이고 이에 반해 6·25 최대 희생 국가인 미국의 기둥 길이는 6번째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기념탑의 기하학적 구조도 의아하다. 중앙의 청동 지구본과 16개의 방사형 기둥은 얼핏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조각가는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미술대학을 다니다 1·4후퇴 때 남하했고 이후 홍익대학 조각과에 편입해 일제나 일본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부산시는 오는 2021년 부산박물관 앞 공터와 주차장을 확장해 5300㎡의 유엔기념광장으로 조성해 유엔참전기념탑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념탑을 옮기기에 앞서 `수수께끼'부터 푸는 것이 순서이지지 싶다.

유엔참전기념탑을 설계한 고 김찬식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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