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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세월도 비껴간 영웅의 품격)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세월도 비껴간 영웅의 품격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05/11/ 조   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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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원수' 갚기 위해 국군 입대
오병하
 1936년 6월 7일 황해도 태생. 1.4후퇴 때 외할아버지가 있던 개성에 식량을 얻기 위해 들렀다가 북한군에 아버지가 총살을 당했다. 사위를 잃은 외할아버지는 외손자가 인민군에 끌려갈 것을 두려워 해 혼자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혈혈단신 임진강을 건너 서대문을 지나 피난민 행렬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후 육군 1사단 학도병 HID 대원으로 1951년 3월부터 1953년 3월까지 수차례 특수임무에 투입됐고, 북한에 7차례 침투해 송악산 인민군 포병 정보를 빼내는 큰 공을 세웠다.

존재 알려지지 않은 `일당백의 전사들'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들 
 `부유한 항구'를 뜻하는 푸에르토리코는 플로리다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0㎞ 떨어진 미국의 자치령이다. 따라서 유엔 참전국 22개국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구 380만명에 제주도 면적의 5배 정도 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푸에르토리칸 병사는 6만5000여 명. 그 중 푸에르토리코 섬에서만 6만1000명이 미군 제65보병연대로 참전했다. 나머지 4000명은 미국 본토에서 참전했다. 대부분 미 육군 제3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에서 큰 공을 세웠다. 맥아더 장군이 `더 많은 푸에르토리칸 병사를 보내라'라며 그들의 용맹함을 칭송했다고 한다.

고참들 전사해 17세 기관총 잡아
로버트 Robert
 1932년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출생. 1950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 1951년 3월 한국에 도착해 최전방 소총수로 투입됐다. 몇 달 뒤 중대의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가 연이어 전사하면서 17세 어린 나이에 기관총을 잡았다. 그때 어깨, 가슴, 다리 부상으로 여러 번 수술을 받았다.

북한수용소 34개월 생지옥 포로 생활
윌리엄 빌 펀체스 William Bill Funchess
 1950년 11월 4일 북한에서 포로가 되었다. `전쟁범죄자' 누명을 쓰고 1953년 9월 6일까지 34개월간 포로 생활을 견뎌낸 뒤 지뢰밭이던 DMZ 구역을 2시간여 걸어 마침내 자유의 품에 안겼다. 북한의 가장 악명 높은 수용소에서 수많은 전우를 잃었고 직접 시신을 파묻었다. 훗날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 손바닥만한 성경책 뒤에 사망한 전우들의 이름을 빼곡히 기록했다.

전역 후 한국 알리는 시인 변신
알렌 가이 Alan Guy
 1952년 1월부터 1953년 9월까지 왕립 육군 의료단 상사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최전방 병사들을 말라리아, 동상, 출혈 등 온갖 질병으로부터 예방하는 데 힘썼다. 영국으로 돌아간 뒤 참전용사를 위한 시를 썼다.

중공군과 백병전, 목에 대검 찔려
살 스칼라토 Salvatore Scarlato
 1952년 4월 14일부터 1953년 4월까지 최전방에서 전투에 임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수없이 밀려오는 중공군과 백병전이 벌어졌다. 총알이 바닥났을 때 목 뒤로 뭔가가 깊게 찔러왔고 그 순간 수류탄이 터진 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다.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의연함에 라미 작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전사통지서로 오인된 성탄절 엽서 평생 간직
노만 보드 Norman F. Board
 미 해병 1사단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파란색, 빨간색 정복을 입은 해병의 모습에 반해 친구 3명과 함께 1949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1950년 11월 27일 심야에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공격을 해왔다. 조명탄을 쏘자 중공군은 총도 없이 달려오다 앞사람이 죽으면 그 총을 가지고 뛰어 올랐고, 또 죽으면 뒷사람이 그 총을 가지고 달려왔다고 한다.
 생사를 넘긴 전투 후 미국의 부모에게 크리스마스 엽서를 보냈는데, 어머니는 아들의 전사통지서로 착각해 문앞에서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때 엽서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1년 뒤 특별휴가를 받아 미국 버지니아의 집에서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투시롤(Tootsie Roll)'은 1896년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해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카랴멜 캔디입니다. 그런데 이 캔디가 6·25전쟁 때 미군을 구했다고 합니다. 사진전에 가면 투시롤를 직접 맛보며 숨은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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