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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리를 눈으로 듣는 사람들)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소리를 눈으로 듣는 사람들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05/11/ 조   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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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면의 밤이다. 낯선 갱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조울(躁鬱)의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새벽 2시. 잠자기를 포기하고 TV를 다시 켠다. 최신 영화쪽으로 리모콘을 돌린다.
 `나는 보리' 포스터 속 푸른 어촌마을에 이쁜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자 주문진 앞바다가 파랗게 펼쳐진다. 카메라 속으로 열한 살 소녀가 걸어들어 온다. 이름은 보리. 코다(CODA:Child of deaf adult, 농인부모를 둔 청인자녀)다.
 보리는 집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다. 자장면을 주문하는 일도, 늦은 밤 배 타러 나가는 아빠를 배웅하는 것도, 시골행 버스표를 끊는 것도 초등학생인 보리의 몫이다. 부모님과 남동생은 농인이라 능숙하게 수어로 의사를 표현한다. 보리는 말을 하고 들을 수 있지만 수어는 서툴다. 보리는 가족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에 파란 지붕의 산사에서 기도를 한다. `소리를 잃게 해주세요'
 온전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보리는 이어폰을 끼고 귀청이 끊어지도록 커다랗게 음악을 듣는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귀가 잠기도록 숨을 참는다. TV에서 나이든 해녀가 난청인 걸 보고 바다에 무작정 뛰어들기도 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보리는 여전히 소리가 들렸지만 일부러 들리지 않는 척 한다. 그 때부터 보리는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된다. 농인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경솔함을 본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함부로 하고, 정작 해야할 말은 하지 않는 모습 속에서 보리는 한 뼘 더 성장한다.
 아침마다 지나가는 골목길 슈퍼아줌마는 등교하는 아이의 등 뒤에 대고 보리마저 못듣게 되어 어쩌냐고 보리네 가족을 걱정한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시켰다며 거짓말로 보리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 엄마랑 같이 간 옷가게에서 주인은 모녀가 농인인 걸 알고 큰 소리로 옆에 있는 판매원에게 몇 천원 더 받으라고 한다. 그날 밤 보리는 부모님에게 수어로 묻는다. 듣지 못해 슬프지 않은지, 남동생이 듣지 못해도 괜찮은지를. 부모님을 대답한다. 들을 수 있어도, 듣지 못해도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부모님은 보리를 꼭 안아준다. 결국 보리는 울면서 들린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사회와의 소통은 다시 보리의 몫이 된다. 영화는 마지막 신은 보리가 씩씩하게 등교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며 참 단단한 가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수어법)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에 한국어 이외에 한국수어가 공용어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년에 나는 늦은 나이에 수어교원자격증 공부를 또다시 시작했다. 코로나 덕분에 오프라인 수업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8시간씩 온라인으로 수어를 보고 있으면 눈이 아파 실핏줄이 터질 지경이다. 귀를 닫고 눈을 열고 시각언어에 집중한다. 농인선생님의 강의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수어에 있어서는 내가 장애인이고 보는 게 부족한 사람이다. 농인들은 듣지 못하지만 참 예쁜 귀를 가졌다. 농인들의 사람의 마음을 깊게 헤아리는 맑고 깊은 눈빛도 가졌다. 나는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삶을 본다. 눈으로만 보아도 사람도, 귀로만 들어도 왜곡되지 않은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see)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참고로 지난 4월 20일은 제41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조영주
우암동 희망복지팀장·수어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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