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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06/04/ 조   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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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을 돌보는 그들, 요양보호사
이상희
요양보호사·용당새마을부녀회 회원

 `내 인생 어느 한 순간도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느 드라마 속 알츠하이머 노인의 명대사가 떠오릅니다. 삼십대 후반에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몸 담았고 벌써 십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아픔과 고독, 그리고 이별을 겪으며 많이 무디고 단단해졌지만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에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 돌보던 어르신들의 부음 소식에는 오래도록 먹먹합니다. 치매증세가 심한 어르신을 1년 넘도록 돌본 적이 있습니다. 가파른 골목 끝, 하늘 아래 위치한 집. 첫 방문 때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는 드시다 만 음식 그릇들과 세탁해야 될 옷가지들을 보며 앞이 캄캄해져 왔습니다. `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인지력이 없어 대화도 되지 않았고 도와 줄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고함도 치셨지만 등 돌리고 벽만 보시며 앉아있는 작은 모습에 댁에 계시는 동안 덜 불편하고 덜 외롭도록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다투기도 하고 공감되지 않는 농담으로 웃기도 하며 그렇게 사계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치매증세가 점점 심해져 혼자 대소변 해결이 어려워지고 식사 또한 챙겨 드시기 힘들어졌습니다. 자주 동네를 배회하셔서 세 시간의 방문에 한계가 온 것입니다. 주말에도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가 돌봤지만 24시간의 보살핌이 간절해져 결국 가족과 상의해 요양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일어난 조바심.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잊힐까,어르신의 기억 속에 내가 사라질까.
 며칠 틈틈이 내 이름 한 글자 한 글자 알려 드리며 기억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먼 길 떠나는 그 날, "너거들 내를 어디다 파노? 얼마 받고 팔아 먹노!" 어르신 아들과 나에게 분노하며 호통 치다 지쳐 결국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차에 실려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혀버린 대문.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알았습니다.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었습니다.
 어르신댁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어르신을 혼자 도맡아 책임지던 장남이 위독해 대학병원 중환자 집중치료실에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들의 배우자가 전화했는데 남편의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시아버지의 생활비 지원이 힘들 거 같다고 했습니다. 난감한 처지라 고민 끝에 구청과 동주민센터 복지담당자와 가까운 복지관에 사정얘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마침 동에 보관하는 쌀이 있다고 찾으러 오라는 복지담당자의 연락에 슈퍼에 가서 수레를 빌려 20㎏ 쌀을 할아버지댁 부엌에 갖다놓았습니다. 2층까지 옮기는 쌀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겨울식량을 대비한 개미처럼 넉넉해졌습니다. 다행스럽게 복지관담당자도 생필품과 반찬을 일주일에 한번 배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햇볕을 쪼이는 어르신의 옆모습을 보며 넉넉한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따뜻하다고 사람들에게 얼른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다시 기운 내 보자고 어깨 한번 툭툭 쳐 보았습니다.
 전업주부였던 내가 요양보호사의 길을 택한 계기는 진갑잔치 한달 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어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마음에 자격증을 따고부터였습니다. 전문가가 되어 모시고 싶어 했던 마음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룰 수 없는 희망으로 끝났습니다.
 떨리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처음 어르신댁을 방문해 인사드릴 때 젊은 새댁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못 미더워하시던 어르신과 보호자의 표정이 생각나 슬며시 미소가 납니다. 한 달이나 버티겠냐던 남편도 조금씩 전문 요양보호사로 성장해가는 나를 보며 대단하다 격려해주고 내 직업을 존중해주었습니다. 늘 마음 깊은 곳에 아릿함으로 자리한 요양원의 어머니. 고독과 노환으로 힘들어하시는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 정성껏 돌봐드리며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조금은 덜 외롭길 조금은 덜 아프시길…. 죄책감을 덜고 싶은 솔직한 욕심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오랜 병마로 작아진 육신을 남기고 떠나신 후 마치 내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과의 인연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이제 어르신들의 든든한 지킴이 사십대 후반의 요양보호사인 딸을 하늘에서 어머니는 대견해 하실 것 입니다.
 내 직업에 몸담으며 가장 오래 돌보는 어르신은 백수를 넘기셨습니다. 백수를 맞이하는 날 벅차오르는 감정은 노환의 고통을 견뎌준 어르신에 대한 감사함과 삶의 애착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 5년이란 인연이 얼굴만 보아도 어르신의 상태와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생신 때 작은 케이크의 촛불을 힘겹게 끄시며 웃던 모습을 보며 처음 만나 이제까지의 우리 함께 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울컥해져왔습니다. "어르신, 내일 또 올게요." "응, 내일 꼭 와야 해."
 그래서 벚꽃 피는 소식, 목련꽃 지고 철쭉이 화려하게 피는 눈부신 봄날의 풍경을 꼭 전해 드려야 합니다.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나날들이 햇살 가득 머금은 목련의 마음처럼 뿌듯합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어서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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