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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남구의 1980!
작 성 자 홍보담당관 등록일 2024/01/05/ 조   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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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전략 요충지서 `산업화 엔진'으로

응답하라, 남구의 1980!
(6)감만동

 1980년대는 국가경제개발 정책으로 인해 지방에서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해 도로, 주택, 상하수도 등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우암동에서 감만동으로 진입하는 우암로인 간선도로가 폭이 좁아 대형차가 다닐 수 있도록 폭을 넓히고 산복도로에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도로도 개설하고, 인도도 만들고 주택, 하천도 정비하는 환경정비 사업이 적극 추진되었다.
 감만동은 신성여객 버스종점을 중심으로 인구와 주택이 밀집돼 감만시장이 활성화되었다. 감만시장 주변에는 주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마을금고, 농협, 은행, 우체국 등 금융기관, 경찰관파출소, 119안전센터, 감만1동자치센터 등 관공서, 병원, 한의원, 약국 등 의료시설, 종교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고 각종 생활 필수 서비스업종의 가게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 시기는 자연보호 국민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책임구역 정화활동, 안 버리기 국민운동 등 다양한 자연보호 활동을 주민들이 실천하고 어깨띠, 피켓으로 계도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학교에서는 새마을금고와 연계한 저축활동이 활성화되어 학생들에게 근검절약정신을 길러 주고, 선진질서확립 켐페인을 청소년단체, 학부모회를 중심으로 전개하여 질서의식을 높였다.
 교육기관으로 1945년 광복 후 현재의 동항초등학교가 있었고, 1981년 개교한 동천초등학교, 1976년 개교한 감만중학교, 1980년에 개교한 감만여자중학교가 운영되었다. 또한 1982년 공립 새마을유아원이 최초로 개원해 2세 교육을 담당하였다.
 감만동 어촌계는 1965년 조합원 42명, 준조합원 20명으로 구성돼 공동작업실을 운영하였고 선착장은 돛단배 종류의 어선들이 30척이나 되었다. 어획물은 주로 광어, 도다리, 멸치 등이며 어획물은 범일동시장, 마을횟집으로 판매하였다. 감만동 어업의 쇠퇴는 연합철강, 극동석유, 성창기업 등의 바다 매립과 공장 건설로 어장이 상실되면서 1985년 어촌계 활동이 중단되었다.
 임해공업단지에는 60년대 중반부터 정유공장이 건설되어 계속 확장 운영되어 왔다. 경제성장을 위한 공업화 과정에서 원유를 수입 가공할 수 있는 정유공장 건설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체제로서 큰 의의가 있다. 지금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한국쉘석유회사 등이 있다.
 부산항 8부두는 1980년 준공 후 3부두기지에서 이전해 온 해군 2해역 사령부가 1986년 해군 3함대 사령부로 승격, 창설되었다. 당시 8부두는 군사용으로 해군, 군수수송단, 미군이 나누어 사용하였다.
 연합철강은 감만동 현 위치에 1962년에 설립되어 총 면적 11만평의 부지에 설비 규모는 연산 100만톤의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1967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졌다. 국내 최초로 냉간압연강판 생산을 시작했고 현재는 냉연강판, 안연도금강판, 칼라강판을 생산하고 있으며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당시 감만동 출신의 많은 청년들이 이 회사에 입사하여 근무하였다. 현재는 동국씨엠으로 개명하였다.
 대양조침공업㈜은 향토기업으로 80년대 들어 공장을 신축, 확장하여 모래구찌 고개길로 이전하였다. 업종은 낚시 및 수렵용구 제조업이며 취급 품목은 낚시바늘 도래, 인조미끼, 쉬벨 등이다. 그러나 경영 생산의 현대화, 전문화 등을 추구하는 경쟁시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60년대부터 대양조침에서 생산하는 낚시바늘을 포장하는 부업거리가 본동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1980년대 감만동 발전상을 회상해보면 감만동의 지리적 특성을 살려 새마을 정신을 바탕으로 감만동 주민 복지를 위한 도로, 주택, 하천 등의 환경정비 사업의 적극 추진, 항만 개발을 통한 정유공장, 연합철강의 건설과 성장, 부산항 8부두 건설을 통한 군사요충지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 성과는 감만동 주민의 적극적인 협력과 노력의 결실이라 생각된다. 〈끝〉
이규섭 전 동항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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