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남구신문 > 남구사람들

남구사람들

남구사람들 (남구 문인들의 글밭)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남구 문인들의 글밭
작 성 자 홍보담당관 등록일 2024/01/05/ 조   회 24
첨부파일
옛시조를 읊으며 걷다

김새록

 잔뜩 찌푸린 하늘은 초겨울 추위를 한결 더 두텁게 내려놓는다. 이럴 때는 장작불을 뜨끈하게 지핀 구들방이 떠오른다. 고향의 아랫목이 그리운 계절이 겨울이다. 보일러를 아무리 가동해도 구들방 온기는 멀다. 농경문화에서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문화는 편의성과 세련된 양식을 제공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적 정분을 잃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부산 날씨도 예사 추위는 아니다. 외출을 하면서 몸을 웅크리며 목도리를 감고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더니 치맛자락을 물고 놓지 않는다. 바람도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지 싶다. 치맛자락에 달라붙은 바람을 떼어 놓을 생각도 없이 그냥 걸었다. 그랬더니 바람은 더는 따라가지 않겠다는 듯 슬그머니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길가에는 나뭇잎이 지각생처럼 굴러다니기도 했다. 마른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져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을 일부러 밟으면서, 바스락거리며 망가지는 소리를 노래 삼아 짓궂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곤 했다. 깔깔 웃어대는 깨복쟁이 친구가 저만치서 이름을 불러대며 뛰어오고 있는 것 같아 내 얼굴이 활짝 핀 꽃이 되었다.
 미화원 아저씨들이 쓸고 쓸어도 길바닥은 연방 낙엽에 묻히고 마는 일,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요"라는 옛시조를 입에 올리면서 하늘을 본다. 눈이라도 오면 좋겠다며 주변을 쳐다보면서 혼자 걷는데 성급한 교회敎會에서 장식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시선을 붙잡는다. 지나간 시간이 불을 지핀다. 자동차가 화살처럼 사라지고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며 휙휙 빠져나가지만 트리는 추억의 문을 열고 길을 동행한다. 비록 캐럴은 옛날처럼 여기저기서 들려오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낀다. 걸으면서 생각이 자유롭게 열리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움직이다 보면 그 속력만큼 생각도 빠르게 스쳐 가지만, 걷기는 다르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면서 생각이 살아난다. 천천히 거닐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 어디 이뿐일까. 무심히 지나쳤던 것도 걸으면서 깨닫기도 한다. 길가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훈훈한 눈길도 주고 내 발길에 차인 작은 돌멩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는지 생각도 해본다. 하잘것없다고 여긴 사물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소통하는 시간이 되고 나를 돌아보는 여유이기도 하다. 해가 설핏하다.
 자기 몸을 비우고 서 있는 겨울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아야겠다.


2004년 《수필과 비평》 수필 등단
2017년《계간문예》시 등단
`문학도시'편집위원, `오륙도문학'편집주간 등
수필집 `달빛, 꽃물에 들다', `변신의 유혹'
시집 `빛, SNS를 전송하다' 등 다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