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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에서 부활하는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6/02/ 조   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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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강석환
위트컴희망재단 이사
부산초량왜관연구회 회장
위트컴 장군 업적 발굴자


 올해 11월11일 남구 평화공원에 어느 유엔군 장군과 한국의 청년, 어린이들이 다정히 함께 걸어가는 모습의 조형물이 제막된다.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밝다. 이들은 어디를 바라보며 어디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던 리차드 위트컴, 지금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안식 중인 그가 자신이 애정을 쏟았던 한국의 어린이, 청년들과 손잡고 되살아나는 것이다. 전세계 한국전쟁 참전국가들이 부산을 향하여 묵념하는 2023년11월 11일 `턴투워드부산' 당일 남구 평화공원에서 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이 준공, 제막된다.
 그는 2차대전 노르망디상륙작전 당시 군수책임자로 아이젠하워와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필리핀 항구 책임자를 거쳐 1953년 부산군수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 해 11월 27일 부산역전대화재가 발생했을 때 3만명의 부산 이재민에 대한 즉각적 구호를 펼쳤다. 또 부산대학교 등 교육시설을 건립하고 중구 메리놀병원과 성분도병원 등 각종 의료시설 건설에도 앞장섰다. 부산시내 교량 및 도로포장 등 간접시설 건설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전역 이후에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한묘숙씨와 결혼해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일과 북녘 땅에 묻힌 유엔군 전사자의 유해송환사업에 여생을 바쳤다. 한국 재건사업을 위해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 등과 한미재단을 설립하는 등 장군은 한국인을 위해 수많은 헌신을 했다. 사후에도 미군 장교라면 누구나 묻히고 싶어 하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를 마다하고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 1982년 유엔기념공원 내 미군 묘역에 영면해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생전 그는 자신을 전혀 내세우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금언처럼 참으로 겸손한 인물이었다고 한묘숙 여사는 증언했다.
 장군은 청소년 교육에서 강조하는 인성 교육의 모범이 될 인물이다. 현재 유엔기념공원에 남편과 합장되어 있는 한묘숙 전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남편 위트컴 장군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하와이대학에 유학을 보낸 딸 민태정에게 한 줄이던 한 장이던 꼭 편지를 쓴 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종이 한 장 허투로 버리지 않고 양말과 내의를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매일 저녁 빨아 널었다. 그리고 전쟁 직후 부산에서 한 선행에 관해 단 한 마디도 아내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 건립을 위한 시민위원회가 한마음이 되어 지난 2022년 11월11일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발족하였다. 지금도 장군의 조형물 건립 시민 모금을 계속 하고 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감사하게도 부산 뿐 아니라 서울, 대구 심지어 미국에서도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
 부산역전대화재 당시 3만명 이재민 구호를 기념해 시민 3만명이 그 보답으로 1만원씩 성금을 내 기금을 조성해 그의 기념조형물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2023년 5월 현재 1만여명이 동참했다. 모금에 동참한 시민 명단을 장군의 조형물 뒤 배경석에 모두 새기기로 하였다.
 시민기금 조성은 어쩌면 영면해 있는 위트컴 장군이 살아있다면 손사래 치며 만류할 일이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국적을 떠나 영원한 부산인, 한국인이 된 위트컴의 인류애 정신과 리더십, 품성을 우리의 마음에 담고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여, 더 많은 시민들이 이 뜻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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