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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본 `애증의 역사' 비문에 오롯 담겨
작 성 자 문화체육과 등록일 2016/06/30/ 조   회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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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본 `애증의 역사' 비문에 오롯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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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본 `애증의 역사' 비문에 오롯 담겨

부산·일본 `애증의 역사' 비문에 오롯 담겨

 


 


야외에 조선시대 비석 12기
남문비·약조제찰비 등
한일관계 사료 가치 높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모르니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으니 있는 지조차 몰랐다.
 부산박물관 야외에 `비석거리'가 있다. 동래관 측면으로 비석 12기가 박물관을 호위하듯 서 있어 이름 붙여졌다. 20m 남짓해 `거리'라는 말이 조금 억지스러워도 비석에 담긴 역사성과 가치는 높다. 비석은 대부분 조선시대 것들이다. 특히 비문에는 일본과 부산과의 `끈끈한 역사'가 새겨져 있다. 부산박물관 장경준 학예연구사(문학박사)는 "비석거리가 있는지를 관람객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여러 비석 가운데 첫 눈길을 잡는 것이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柔遠閣先生埋案感古碑)'와 그 비를 덮고 있는 석조 비각이다. 복잡한 명칭 탓에 `유원각 선생이 뭐하셨던 분인지'를 궁금해 하는 관람객이 많다. `유원각선생'은 대일외교에 있어 통역관인 소통사(小通事)를 가리킨다. 소통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동래부 소속의 하급 통역관이다. `매안'은 선조의 신주를 묘 앞에 묻는 것을 말한다. 감고는 오래 기억한다는 뜻. 쉽게 풀면 `대일 외교에 종사한 선조 역관들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비석은 고종이 승하하기 한 해 앞서 광무 10년, 1906년에 세워졌다. 혼란스럽던 구한말 대일관계사의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부산의 비석 가운데 유일하게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비석 못잖게 비석을 보호하는 돌 비각이 특이하다.
 역사성과 존재감이 가장 큰 비석으로 동래남문비가 꼽힌다. 임진왜란 당시 왜구와 싸우다 순절한 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1670년(현종 11) 동래읍성 남문 밖에 세워 놓은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 왔다. 부산 지역의 순절 사적을 적은 `일필휘지' 비문은 서인 세력의 좌장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 비석은 높이 2.25m, 폭 1.21m로 웅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 훼손이 심해 석면이 떨어져 나가고 비문 일부만 남아있다. 여의주를 입에 문 쌍용을 새긴 머릿돌도 분리돼 옆에 따로 놓여있다. 다행히 그 옛날 누군가 비문을 탁본해 놓아 이를 근거로 복제 비석을 만들어 원형 비석 옆에 세워 놓아 훼손 전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지리적 이유로 부산과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역사'를 맺어 왔다. 약조제찰비(約條制札碑)는 그 `애증'의 징표다. 초량 왜관 운영을 위해 동래부사와 대마도주가 맺은 `다섯가지 외교 약조'를 새겨 놓았다. `출입을 금한 경계 밖을 넘어 나오면 크고 작은 일 논할 것 없이 사형에 처한다'는 등의 서슬 퍼런 금지 조항이 적혀 있다.
 비석은 같은 내용을 각각 한문과 일본어로 초량 왜관과 대마도에 세워놓았는데 대마도 비석은 사라졌다.
 동래부 남문 밖에 나무다리 네 곳을 돌다리로 바꾼 것을 기념해 만든 사처석교비는 문외한이 봐도 서체가 아름답다. 도장 글씨로 많이 쓰이는 전서와 예서로 된 비문은 동래 출신의 조선시대 화가 변박이 썼다. 기장군 효암이 앞바다의 대표적 진상품였던 전복의 불법 채취를 막기 위해 만든 `효암리 전복바위'도 흥미롭다.


 


1. 석등 조선 19∼20세기
2. 문관석 조선 18∼19세기
3. 문관석 조선 18∼19세기
4. 문관석 조선 18∼19세기
5. 만덕사지 3층석탑 고려
6. 부도 조선 15∼19세기
7. 석조여래입상 고려 11∼12세기
8. 석조여래입상 고려 9세기 
9. 석조불상편 고려 10∼15세기 
10. 석탑간주석 통일신라 9세기
11. 석등하대석 통일신라 9세기
12. 문관석 조선 18∼19세기
13. 신라석등 통일신라 9세기
14.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통일신라 9세기
15. 사처석교비 조선 1781년
16. 호천석교비 조선 1711년
17. 외석교비 조선 1785년
18. 동래부사 이택수선정비 조선 1774년
19. 약조제찰비 조선 1683년
20. 척화비 조선 1871년
21. 동래남문비
22. 동래남문비 조선
23. 부산직할시 승격기념탑
24. 옥개석 조선 15∼19세기
25. 옥개석 조선 15∼19세기
26. 옥개석 조선 15∼19세기 
27. 향로대 조선 18∼19세기
28. 배래석 통일신라 9세기
29. 유원각선생매안감고비 대한제국 1906년
30. 자헌대부배신기처 열부정부 인성씨 일제강점기 1942년
31. 동래성 인생문석 조선 1731년
32. 비좌 조선 18세기 전반 
33. 비좌 조선 18세기 전반
34. 이수 조선 17∼18세기
35. 효암리 월경 전복채취금령불망비 조선후기 1799년
36. 돌절구 현대 20세기
37. 절구공이,절구 현대 20세기
38. 절구 현대 20세기
39. 돌절구 현대 20세기
40. 절구(돌절구) 조선 19세기
41. 돌절구 조선
42. 연자방아 조선 19세기
43. 연자방아석재 조선
44. 돌확(수조) 조선 18세기 전반
45. 석탑(오층석탑) 조선 20세기 전반 
46. 돌확(수조) 조선 18세기 전반
47. 돌쩌귀 고려후기 14세기
48. 귀쭈석(돌쩍이) 조선 18∼19세기
49. 석정 통일신라 9세기
50. 동래부사유공심청덩선정만고불망비 조선 1659년
51. 정상만작 모자석조상 광복이후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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