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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사람들

남구사람들 (부산 마지막 연탄공장 문현동 진아산업 어느 연탄의 고백)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부산 마지막 연탄공장 문현동 진아산업 어느 연탄의 고백
작 성 자 관리자 등록일 2016/04/12/ 조   회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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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갓 태어난 까만 몸뚱이에 윤기가 흐른다. 몸무게 3.6㎏, 다부지고 조각 같은 몸에 22개의 작은 숨구멍이 나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스치듯 등장하지만 존재감은 꽤 크다. 한국 현대사의 아이콘, 나는 연탄이다.
 태어난 곳은 문현동 진아산업이다. 부산에 남아 있는 마지막 연탄공장이다. "연탄공장이 아직 있어?"라는 질문도 이젠 지겹다. 한자리에 40년 넘게 뿌리 박고 있는데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연탄 땔 일이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시인 안도현은 연탄의 설움과 고매한 희생을 높이 사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며 뭇사람들을 향해 일갈했지만 근래 연탄재 자체가 사라져 차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마지막' `최후' 이런 표현이 들어가는 것 치고 사정이 녹록할 리 없다. 근래 사장님 심사가 영 불편해 보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큰 적자가 예상된다. 연탄 매출의 4할은 화훼단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데 올해는 2할에 그치고 있다. 따뜻한 날씨 탓이다. 예년 같으면 이 맘 때가 대목인데 지금은 한가하다. 한해 800∼900만장을 팔아야 순익분기점인데 올해는 500∼600만장에 그칠 전망이다. 텅 빈 사무실의 연탄 난로를 물끄러미 보던 사장님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버티기 힘든데…."
 돌이켜보면 우리 연탄에게도 각광 받던 시절이 있었다. 사재기 품목으로 지정될 만큼 귀한 대접도 받았다. 땔감으로 민둥산으로 변한 이 땅의 금수강산을 푸르게 바꿔 놓은 것도 선배 연탄들의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 전성시대는 경제성장이 활발하던 70∼80년대. 진아산업 역시 이 무렵 최고 황금기를 누렸다. 사무실과 길 건너 공장에는 연탄을 사려는 고객과 돈으로 넘쳐났다. 일꾼만 300명에 달했다. 80년대 중반 전국 1000대 기업에 들었고 매출액 기준으로 부산의 50대 기업으로 당당히 어깨를 겨뤘다. 그랬던 공장이, 지금은 서무를 포함해 일꾼 14명이 전부다. 그마저 일이 없어 툭하면 놀려야 할 판이다.  
 "공장 문 닫고 주차장을 차려도 벌이가 지금보다 낫겠다"며 주위에서 염장을 지르지만 적자를 감내하면서까지 공장을 돌리는 데는 지난해 돌아가신 회장님의 영향이 크다. 연탄으로 일가를 이뤄 연탄 사랑이 각별했던 분이다. 계열 회사들이 적자를 메워 버티고 있다. 진아산업은 옛 초량연탄을 인수하면서 문현동에 자리 잡았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회사 이름을 초량연탄에서 어딘가 근사해 보이는 `진아산업'으로 바꿨지만 변신은 쉽지 않았다. 시장에선 진아산업 대신 브랜드인 초량연탄으로 팔린다. 
 연탄의 효시는 일본 큐슈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으로 건너왔고 6·25를 거치면서 황금기를 누렸다. 원래는 구멍 갯수에 따라 구공탄, 십구공탄 등으로 불리다 1961년 정부가 규격을 정하면서 연탄이란 정식 이름을 얻었다. 앙증 맞은 사이즈에 불구하고 7∼8시간 너끈히 불타며 4400∼4600㎉의 열량을 뿜어낸다. 
 화력도 화력이지만 연탄의 최고 미덕은 예나 지금이나 `가격'이다. 현재 연탄 한 장 값은 550∼600원. 껌 한통 값에도 못 미치는 연탄값의 비밀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 가능하다. 진아산업의 경우, 연탄 한 장을 찍어내는데 원가는 소매가격에 육박하는 534원. 여기에 정부가 한 장 당 271원 제조비지원금을 보태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겨울 난방비로 연탄보일러가 기름이나 가스에 비해 1/4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도 연탄 때는 집이 있어?"라는 불편한 질문과 시선에도 연탄이 달동네 서민 곁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더불어 연탄공장 사람들이 풀풀 날리는 시커먼 탄가루를 들이키며 오늘도 묵묵히 연탄을 찍고 나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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