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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사람들

남구사람들 (규정에 발묶인 비운의 독립운동가)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규정에 발묶인 비운의 독립운동가
작 성 자 관리자 등록일 2016/04/14/ 조   회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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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용호동 천주교묘지 이장
독립운동 증거 없어 서훈 못받아
 남구 유족 "현충원 못 옮겨 불효"

 영화 `암살'의 흥행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리 남구에도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 못잖게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여성독립운동가의 흔적이 존재한다. 용호동 천주교공원묘지에는 아주 특별한 묘 하나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인 안성녀 여사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광복절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안 여사의 묘를 찾아 나섰다. 안 여사의 친손자인 권혁우(71·대연5동 거주)씨가 동행했다. 수풀을 헤집고 길을 잡던 권씨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할머니 기일이 되면 오늘처럼 늘 비가 내렸다. 참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도로에서 100여m 내려오자 오륙도를 내려다 보는 작고 초라한 봉분이 나왔다. 시멘트로 만든 묘비에는 서툰 한글로 `안누시아성여지묘'라고 적혀 있다. 무덤 바로 앞은 비탈이 있어 절을 올릴 수도 없었다. 
 원래 안 여사는 6·25 때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 와 1954년 영도구 신선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유족들은 인근 청학동에 묘를 세웠다. 그러다 묘지 자리에 부산체육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1974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당시 손자 권씨는 아버지와 함께 손수레에 시멘트와 모래를 실어와 묘단과 비석을 만들고 글자를 직접 새겼다고 회고했다. 
 안 여사의 묘지와 그의 독립운동 행적은 10년 전 국제신문에 의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안 여사는 오빠 안중근이 하얼빈 의거를 일으키고 이듬해 서거하자 연해주와 만주 등지로 망명길에 올랐고 오랜 세월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학계는 물론이고 안 의사 친척들조차 안중근에게 정근·공근 두 남동생 외에 누이 동생이 한 명 있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안 여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전무했다. 이 때문에 안 여사는 사망 이후 존재 자체는 물론이고 독립운동을 입증해 줄만한 공식 문서가 없어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해를 현충원으로 옮기지 못하고 40년 넘게 천주교공동묘역 풀숲에 방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 조명 이후 정치권도 나섰지만 국가보훈처의 경직된 원칙에 막혀 독립유공자 서훈 지정은 번번이 좌절됐다. 
 "100년 전 오빠를 따라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하신 분입니다. 더욱이 여자의 몸인데 무슨 증거를 남길 수 있단 말입니까." 권씨가 어의없다는 듯이 말했다. "독립유공자들의 후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먹고 사는 게 빠듯하고 많이 배우지 못해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얼마 안 되는 할머니의 흔적이라도 그때 남겨두고 보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다"며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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