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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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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의 명물 오륙도 해녀 철의 여인들, 오륙도 바다는 삶 그 자체였다
작 성 자 관리자 등록일 2016/04/15/ 조   회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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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5시간 먹지도 쉬지도 않고 물질
 어촌계 소속 19명 … 63세가 막내
 제주 출향 해녀들, 40∼50년 배테랑
"힘들어도 평생 동고동락 … 벌이는 괜찮아"

 "많이 추우시죠?"
 근 다섯 시간 만에 얼음장 같은 바닷물에서 올라온 그들이 안쓰러워 물었다. `딱딱' 이빨을 부딪치면서도 들릴듯 말듯 "괜찮아요"라며 누군가 답했다. 갓 잡은 털게 한 마리를 보여주는 이도 있다. 달관의 여유가 엿보인다.
 여전히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12일, 오륙도와 백운포 앞바다에 까만 잠수복과 둥근 수경을 낀 `무리'들이 잠수를 하고 있었다. 얼핏 해안 침투훈련을 하는 해병 수색대원 같은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륙도 해녀'들.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에서 외지 관광객을 상대로 해산물을 팔던 그 할머니들이다. 바다를 누비는 모습은 좌판 행상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다룬 비장함이 읽힌다.
 남구에는 현재 용호어촌계 나잠업회 소속의 해녀 19명이 활동하고 있다. 나이는 60∼70대. 막내 해녀가 예순셋이다. 대부분 제주도가 고향인 출향 해녀들이다. 지금도 급하면 제주 사투리가 입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어머니와 그 어머니로부터 `업'을 물려받은 2대, 3대 해녀도 몇 있다.
 남구의 해녀 역사는 본시 용당이 시초다. 일제 강점기부터 용당 앞바다에 해녀들의 물질이 있었지만 일대가 매립되면서 사라졌다. 용호동에 해녀가 정착한 것은 1950년대 후반. 당시 일본으로 수출하던 천초(우뭇가사리) 성게 등을 채취하는데 제주 해녀들이 스카우트됐다.
 오륙도 해녀들의 작업 해역은 용호동 섶자리∼신선대 일원. 오전 8시 무렵 납덩이를 허리에 두르고 태왁, 망사리을 끼고 한 손에는 빗창을 든 채 유람선 성조호를 타고 바다에 입수, 점심 무렵 배를 타고 다시 뭍으로 나온다. 네댓 시간을 꼬박 바다 속에서 먹지도 쉬지도 않고 물질을 해야 한다. 지난한 물질을 끝내면 뭍으로 나와 옷을 갈아입고 도시락으로 허기를 떼운 뒤 선착장 좌판에서 그날 잡아온 해산물을 판다. 반백년이 흘러도 해녀의 일상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다들 40∼50년 물질을 해 온 베테랑들이지만 잠수능력과 연령에 따라 1진과 2진으로 나뉜다. 수심 10여m까지 잠수가 가능한 60대 젊은 해녀들로 구성된 1진은 바다의 산삼이라는 해삼 같은 고급 해산물을 공략한다. 그에 반해 70대의 2진은 해안가 근처에서 미역이나 성게 등을 걷어 올린다.
 "하루 천 번 가까이 물속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해요." 어느 해녀의 일성이다. 더구나 오륙도는 남해와 동해가 갈리는 교차점, 물살이 거칠기로 악명이 높다. 덕택에 물이 맑아 해산물이 청결하다. "우리가 잡은 멍게, 해삼 먹고 식중독 걸렸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었어요."
 극한의 직업, 그럼 수입은 어떨까. "얼마나 버시느냐" 물으니 다들 대답은 않고 싱긋이 웃고 만다. "스카이워크 덕택에 손님이 늘었다"고만 얼버무린다. "정년도 없고 우리 나이에 어디 가서 이 만큼 벌겠어요." 벌이가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지 싶은데 몸은 골병이 들었다. 일과를 마치면 다들 집보다 병원을 먼저 향한다.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해녀들의 고충은 정작 딴 데 있었다. 마땅한 쉼터가 없어 몇 해 전부터 컨테이너를 가져다 탈의실로 쓰고 있다. 오륙도 일원은 국가명승지이자 문화재보호구역, 쉼터 놓는 게 여의치 않다. 컨테이너 탈의실은 불편도 하거니와 비용이 꽤 든다고 한다. 태풍이라도 올라치면 지게차와 크레인을 불러 안전지대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많을 때는 1년에 열 번 이상 옮겨야 한다고. 이사 비용은 당연히 해녀들 몫이다.
 해녀들은 꼭 돈 때문에 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평생 함께 물질을 해 온 형제들이에요. 여기서 같이 웃고 이야기하면 외롭지가 않아요."
 눈 밝은 관광객이라면 선착장 좌판 해녀들 의자가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다들 버려진 전기밥솥을 의자 대신 깔고 앉아 있다. 밥솥에 구멍을 낸 뒤 그 안에 양초를 태운다. 뼈마디 시린 겨울을 이겨내는 그들만의 노하우다. 여유에 지혜까지 겸비한 해녀들, 하지만 이들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들 고령인데다 원체 힘든 일이라 명맥을 이을 후계자가 전무한 상황이다. 오륙도 앞바다에서 해녀가 사라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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