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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사람들 (오륙도 칼럼)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오륙도 칼럼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2/28/ 조   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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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영화 `사울의 아들(Son of Saul)'을 본 적 있습니다. 나치에 부역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같은 유태인들의 사체를 처리하던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의 일원인 사울이라는 사내가 가스실에서 죽은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허구이지만 존더코만도는 실제 있었던 유태인 시체 처리반입니다. 나치는 목숨을 담보로 이 끔찍한 뒤처리를 같은 유태인에게 시키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작업'이 끝난 살인가스실에서 유태인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참혹한 모습을 롱테이크로 보여줍니다. 이 불편하고 섬뜩한 장면에서 문득 이런 호기심이 상상으로 확장된 적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무기력하게 가스실로 걸어 들어가면서 그 순간 가장 만나고 싶은 대상으로 누구를 떠올렸을까?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답합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습니까?
 어쩌면 저라면, `귀신'이 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죽음 직전에 귀신을 목도한다면, 죽음 이후에도 삶은 이어질 것이며, 사랑하는 이들 곁에 머물거나 아니면 원귀가 되어 원한을 되갚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으며 죽었을지 모릅니다. 600만명이 넘는 유태인들이 이렇게 소각되었음에도, 홀로코스트의 주범들을 단죄한 것은 소복 입은 원귀가 아니라 전범재판소의 재판관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 귀신들은 어디서 뭘 한 걸까요?
 물질이든 생명이든, 불멸의 삶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류가 죽음의 의미를 자각한 이래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는 답이 바로 `죽음 그 너머'입니다. 과거에는 종교로, 지금은 기술적 진보로 그 `방정식의 근'을 구하고자 하지만 정작 `답'이 있는지 자체가 의문입니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겟 아웃(Get Out)처럼 가끔 정신이 육체에 갇히는 그로테스크한 상상에 빠져 보곤 합니다. 뇌사상태에 빠진 식물인간처럼 외부와 단절된 채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빈 공간과 그 속에 홀로 갇히는 극단의 공포 말입니다. 마치 빅뱅 이전의 우주처럼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의식만 남게 된다면 이는 불멸의 삶 보다는 지옥에 가깝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곳에서는 빠져 나오는 유일한 탈출구는 죽음뿐 일지 모릅니다. 불가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처럼 삶과 죽음이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늦은 밤 홀로 잠을 자다가 기괴한 분위기에 휩싸이거나, 아니면 인적 없는 심야의 산길에서 이유 없이 자동차가 멈춰서더라도 조금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때 유령이나 귀신 등 불가해한 존재와 조우하게 된다면 `유레카'를 소리쳐도 좋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사인을 받아두고 함께 사진도 찍어 두면 금상첨화입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그토록 오랜 세월 찾아 헤맨 `진실'이 바로 그대 앞에 있으니 말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어느 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수녀 이해인의 `오늘을 위한 기도'의 한 구절입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Memento Mori, Carpe Diem)'. `늘 죽음을 명심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에 나오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경구입니다.
 한번쯤 자신의 죽음을 앞뒀다고 가정하고 가장 만나고 싶은 이가 누구일지 상상해 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유한한 삶에서 지금 살아있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지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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