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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7/31/ 조   회 55
첨부파일
김태유
윌리스병원장
부산장난감박물관장·발명가

나홀로 해외여행, 나 자신에게 선사한 `인생 선물'


 그동안 꽁꽁 숨겨 놓았던 고민을 하나 꺼냈다. 장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현실적, 심리적 부담으로 `버킷리스트'에만 담아 놓았던 그것, 나홀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장엄한 로키산맥과 영화의 도시 로스앤젤러스와 서부 사막을 묶어 미국~캐나다 북미대륙을 열흘간 돌아 다녔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과 숨 가쁘게 살아온 나 자신에게 준 큰 선물이었다.
 가이드가 동행하는 잘 짜인 패키지 관광상품이 아닌 `반 자유여행'으로 난생 처음 북미대륙을 밟았다. 언어의 어려움과 교통수단의 제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현지에서 합류하는 패키지여행과 개인 자유여행을 조합해 여행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도착한 캐나다 밴쿠버,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공항에 내리자마자 방향감각을 잃고 어리벙벙한 상태가 되었다. 예약한 민박집에 쉽게 갈 줄 알았는데 의사소통과 교통체증으로 힘들게 숙소에 도착했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열심히 정보를 찾고 현지 적응도 하면서 로키산맥 투어에 합류했다. 우선 대자연의 웅장함과 아메리카 대륙의 광활함에 무척 놀랐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 갇혀 한국에서도 좀체 자연을 느끼지 못했는데 영화나 사진으로만 봤던 경이로운 대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로키산맥 패키지여행에 합류한 첫날 의도치 않게 나는 인기스타가 되어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혼자 여행 온 것이 다들 신기했던 모양이다. 티는 안내려 했지만 다들 나를 유심히 지켜보는 눈치였다. 일행 중 한 명이 용기를 내 드디어 나에게 물어왔다. "어떻게 혼자 오셨어요?"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다. "혼자 잘 놀 줄 아는 사람은 혼자서도 여행을 가기도 하고, 이번에는 가족과 시간이 맞지 않아 저 혼자 왔습니다." 내 대답에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는지 환하게 웃는다.
 `셀카'가 어려울 때는 젊은 일행들이 사진을 찍어주고, 식당에서 테이블의 짝이 맞지 않으면 기꺼이 자신들의 테이블로 합석할 것을 받아 준 중년 부부도 있었다. 아내와 같이 온 어느 사내가 나에게 혼자 다니면 장점이 많은지 단점이 많은지를 부러운 듯 물었다. 나한테 용기를 얻었는지 다음에는 자신도 홀로 여행을 해봐야겠다고 했다. 이래저래 여행 중에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식 패키지상품은 여행보다는 숙제에 가까웠다. 우르르 몰려가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포즈로 복사하듯 사진을 찍어대고 곧바로 콩나물 버스를 타고 다음 `촬영지'로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에서 풍경과 여유가 많이 퇴색되었다.
 로키산맥 패키지여행을 뒤로 하고 혼자서 미국 서부도시 로스앤젤레스 여행을 시작했다. 황량하면서 묘한 매력을 풍기는 서부의 사막과 유명 영화배우들이 몰려 산다는 미국 최대의 부촌 베벌리힐스도 돌아봤다. 언덕빼기에 있는 초호화별장들을 보고 있자니 세상과 단절된 고립무원의 섬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지지고 볶아도 사람은 역시 사람들 틈에 끼여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삼 얻었다.
 기념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5만원 짜리 후드 티이다. 준비해 간 옷이 너무 얇아 며칠간 추위로 고생을 했는데 후드 티 덕분에 변덕스러운 로키의 날씨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모자 덮개가 달린 후드 티가 중년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실용적인 옷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여행이 늘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상과 사람, 문명을 접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껍질을 깬 나 자신을 대면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삶의 여러 기쁨 가운데 으뜸은 여행이 아닐까 싶다. 바쁘다고 미루지만 말고 한번쯤 모험 같은 여행에 도전해 보시길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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