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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작 성 자 관리자 등록일 2016/04/15/ 조   회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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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 저널리즘의 지평을 연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가 남긴 말이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진실의 무게감과 함축성을 압축한 표현이다. 투철한 기자 정신을 뜻하는 카파이즘도 여기서 유래됐다. 사진만 잘 찍는 게 아니라 대단한 달변가였던 모양이다. 카파의 어록은 지금까지 전세계 사진기자들의 금과옥조이자 바이블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저널리즘의 잠언이 가끔은 상식을 깨는 무리한 취재 행태에 대해 면죄부로 쓰여 안타깝다. `충분히 다가가지 않을수록 충분한' 사진도 있는 법이다. 
 지난 15일 유엔기념공원에서 프랑스 참전용사였던 고 레몽 베나르 씨의 안장식이 열렸다. 휴전 협정 이후 유엔기념공원에 묻히는 1호 참전용사라는 역사성에 가수 이승철 씨와의 인연이 알려지면서 국내 모든 언론의 사진 및 카메라 기자들이 출동했다. `L'자 형태의 포토라인이 기자들로 문정성시를 이뤘다. 여기에 사진 동호회 회원들까지 출사를 감행, 행사장은 그야말로 물 반, 카메라 반이었다. 
 안장식이 말미로 가자 일부 취재진들과 동호인들이 포토라인을 넘어서면서 `묵계'가 깨졌다. 특히 사진동호회 회원 한 명은 유족 턱밑에서 셔터를 쏴대기에 이르렀다. "포토라인 밖으로 나가달라"는 유엔관리처 직원을 되레 쏘아보는 모습에선 적반하장의 황당함마저 느껴졌다.
 이날은 한 사람의 장례식이었다. 그것도 65년전 이 땅에서 목숨을 걸고 자유의 가치를 구현하고, 그 대가로 평생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한국을 잊지 못한 참전용사의 고귀한 영면을 지키는 자리다. 국민의 알 권리 운운은 그런 용사와 유족들에 대한 모욕이다. 
 스물 두살 청년 카파를 단박에 전쟁 영웅으로 올려놓은 스페인 내전의 `총 맞은 병사' 사진은 최고의 찬사와 함께 지금까지 연출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너무 가까이서 찍은 탓일지 모른다. `충분히 다가간' 사진이 가장 무례한 사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성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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