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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소식 (유엔기념공원 잠든 노르웨이 참전용사 트베이트 씨)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유엔기념공원 잠든 노르웨이 참전용사 트베이트 씨
작 성 자 문화체육과 등록일 2016/06/29/ 조   회 1019
첨부파일 1면노르웨이참전용사.JPG (171 kb)
노르웨이참전용사.png (435 kb)

유엔기념공원 잠든 노르웨이 참전용사 트베이트 씨

유엔기념공원 잠든 노르웨이 참전용사 트베이트 씨

 


선원으로 참전 1951년 8월 부산서 사망
102세 부인 재혼 않고 평생 독신 생활
당시 한 살배기 딸 "한국인에 감사"


 


■ 노르웨이 유족 이메일 인터뷰


 21개국 유엔 참전국 깃발이 휘날리는 유엔기념공원의 상징구역, 여느 나라와 달리 노르웨이 구역에는 단 하나의 묘소만이 외롭게 있다. 노르웨이 참전용사 가운데 유일하게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레이달 게오르그 트베이트(Reidar Georg Tveit) 씨의 묘다.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는 전투병력 대신 의료지원부대를 한국으로 파병했다. 이들 다섯 나라 가운데 노르웨이에서만 희생자가 나왔다.
 이동 야전병원(NOMASH)을 운영한 노르웨이는 전장 한복판에서 수많은 생명을 살린 대신 세 명의 용사를 잃었다. 이 중 두 명은 정전협정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 사망해 트베이트씨가 유일한 `전시 희생자'로 기록되어 있다.
 의료지원 국가 중 유일한 전시 희생자임에도 트베이트 씨에 대한 정보를 국내에서는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본지는 주한 노르웨이대사관과 닐슨 에겔리엔 전 노르웨이 참전용사협회장, 노르웨이·한국친선협회 초대회장인 루이 팔크 의원의 도움으로 딸 벤테 샌도스(67) 씨와 극적으로 연락이 닿았다.
 트베이트 씨는 군인은 아니었다. 그는 의료진과 장비를 실은 상선 벨로션의 2등 기관사였다.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의 안장자 사망기록지에는 `1951년 8월 23일 부산항에 입항하는 도중에 숨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망원인은 병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더운 날씨 탓인지 이틀 뒤 매장했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 한 살배기 딸과 부인을 두고 있었다.
 트베이트 씨는 노르웨이 남부 크라게뢰(kragero) 출신이다. 인구 만 명 남짓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로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 `겨울, 크라게뢰'의 배경된 곳이다.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상선을 탄 뼛속 깊은 뱃사람이었다. 딸 샌도스 씨는 "아버지는 2차 대전 때도 선원으로 참전해 미국과 영국을 오갔다"고 했다. 부인 베티 트베이트 여사는 올해 102세로 현재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편을 잃은 후 지금껏 재혼하지 않고 혼자 딸을 키웠고 고령임에도 정신은 또렷하다고 한다.
 샌도스 씨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유엔기념공원에서 행사를 하고 나면 참석한 분들이 아버지 묘를 찍은 사진을 보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했고 이야기를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샌도스 씨는 부친의 묘를 참배하러 유엔기념공원을 다섯 차례나 방문했다. 그때마다 잘 정돈된 묘를 보며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의 노고에 고마워했고 아버지 묘를 노르웨이로 이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트베이트 씨의 묘는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3개국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노르웨이 호콘 마그누스 왕세자와 왕세자비가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그의 묘를 참배하고 참전기념비를 세웠다. 노르웨이 외에도 한국전 참전 북유럽 국가의 군 관계자, 참전용사, 언론사 그리고 수많은 북유럽 관광객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유엔기념공원을 꾸준히 찾고 있다. 〈관계기사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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