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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소식 (군마 기르던 목장〈 석포마을 〉 … 제사 지낸 당집〈 당곡마을 〉 있어 유래)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군마 기르던 목장〈 석포마을 〉 … 제사 지낸 당집〈 당곡마을 〉 있어 유래
작 성 자 문화체육과 등록일 2016/07/26/ 조   회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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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마을 과거 수군 주둔설 … 옛 지도서 군마 방목 기록
당곡마을 문화회관 뒷편 산마을 … 용소마을서 제관 뽑아

 

 석포마을은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에 `남촌의 관내에서 27리 거리에 석포리가 있다'고 하였다. 석포는 그 동안 수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알고 있었으나, 군영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전선이 정박할 만큼 깊은 곳이 없다. 천제등(天際燈), 비사등(飛蛇燈), 전선등(戰船燈) 같은 지명이 근처에 있었다고 하나, 좀 더 고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선 초에 석포(石浦)라고 함은 황령산 산록부터 시작하여 용호동 일대를 말하였는데, 군사용 말을 기른 목장이었다.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목책을 설치하고 말들을 방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대동여지도 등 각종 고지도에 석포목장이 있다.
 부산문화회관과 유엔기념공원 맞은편 일대를 당곡(堂谷) 또는 당골이라 불렀다. 이곳은 용소마을에서 제관을 뽑아 제사를 지내던 당이 있었던 곳인데 한때는 제를 지낼 사람이 없어 절에서 대신 지내다 창조아파트가 들어서자 지역 발전을 위해 헐어버렸다. 예전에는 대연4동의 당곡과 윗용당의 당곡을 구분하지 않고 당곡마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유엔기념공원과 부산문화회관,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반 토막이 되어 지금은 유엔평화기념공원 위에 작은 마을로 남아 있다.

뜦석포마을과 당곡마을의 성 씨
 석포마을의 동래 정 씨(의 시조는 중시조(中始祖:쇠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인 안일호장 회문공(安逸戶長 繪文公)의 23대손인 통정대부 춘세공(統政大夫 春世公)이다.
 춘세공(春世公)의 부친은 동래성 수문장로 통정대부에 추존된 정복덕(鄭德福)이며 묘소는 거제리 하마정에 있었다, 통정대부인 정춘세는 1591년에 태어나 대연동 용소마을에서 지내다가 석포에서 거주하였다. 묘소는 용소에 있었다. 정춘세는 1591년 태어났고 1615년 무렵 석포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곡의 남평 문 씨는 초읍에서 이주하였기 때문에 남평 문씨 의안공파 초읍계가보(南平 文氏 毅安公派 草邑系家譜)에 속한다. 당곡에 남평 문 씨가 입향한 것은 산소를 유추해 볼 때에 23대손인 문이호(文以  )이다. 아들은 문상장(文尙章)인데 그의 부인은 죽산 박 씨로 못골 출신으로 추정되어 대연4동에 거주했던 것이 확실해진다. 아마 문이호가 석포목장에 벼슬을 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지금부터 370년∼4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주요 인사로는 동래구와 해운대구의 부구청장을 역임한 33대 문성복(文成福) 등이다.
 대구 달성 서 씨가 당곡에 온 것은 330∼350년 전으로 사료된다. 달성 서 씨의 중시조인 서진(徐晉)의 14대인 서윤국(徐允國)은 귀양(貴陽)과 귀학(貴鶴) 아들 둘을 두었다. 귀양(貴陽)은 가야 중심으로, 귀학은 대연동 쪽 조상이 되었다. 19대 양재(養載)는 두 아들인 화선(化善)과 화일(化日)을 데리고 가야에서 대연동 당곡으로 이주하였다. 화선의 자손 21대가 되는 종한(宗漢)은 일광 쪽에 이주하였고, 화일(化日)은 22대가 되는 원규, 윤규, 성규, 익주, 석규(元奎, 允奎, 性奎, 翊奎, 德奎)라는 아들을 두었다. 이들 자손들은 당곡을 중심으로 용당과 못골 등지에 거주하였다.
 당곡의 경주 최 씨는 사성공파(慶州崔氏 司成公派) 당곡문중(堂谷門中) 또는 대연문중(大淵門中)이라고 한다. 대연4동 경주 최씨 당곡의 입향조는 330∼360년 전에 당곡에 왔는데, 그는 시조인 최치원의 23대 손인 가선대부 최달만(崔達萬)이다. 그의 묘소는 부경대학교 용당캠퍼스 내에 있었다. 현재 용당동에 위치한 옛 당곡의 연못 자리 위에 경주 최씨 당곡문중의 제실이 있다. 이곳에서 최달만을 비롯하여 위패 40기를 모시고 음력 10월 10일 후손들이 모여 정성을 다해 시사를 지내며 일가 간에 우의를 다지고 있다. 후손으로는 용호새마을금고 이사장인 최대복 등이 있다.

 

공기화 (수필가·부산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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