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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격동의 현대사 말없이 지켜본 남구의 저 소나무)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격동의 현대사 말없이 지켜본 남구의 저 소나무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7/30/ 조   회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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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함이 스며있는 사진이다. 1944년 창설된 미8군은 원래 일본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6·25전쟁이 발발하자 맥아더 장군은 미8군 사령관인 워커 중장을 한국으로 불러 지상군 사령관에 임명했다. 이에 따라 미8군이 부산교두보작전으로 남한을 지켜내야 했다.
 탱크 240여 대로 파죽지세 남하하던 인민군은 낙동강전투에서 미군과 우리 국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A라인(주문진-상주-마산)이 뚫리고, B라인(포항-왜관-마산)의 포항도 잠시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정부가 수도를 부산으로 이전한 후 대구역에 포탄이 떨어지자 미8군은 1950년 9월 5일 사령부를 부산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로 이전했다. `버텨라 안그러면 죽어라(Stand or die)' 일화로 유명한 워커 장군의 지휘로 낙동강전투에서 유엔군이 승기를 잡으면서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될 수 있었다.
 사진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산은 장자산팚이다. 맨 앞에 짙게 보이는 산은 운전면허장이 있는 수장산팛이며, 맨 오른편의 산이 용당동 뒷산인 신룡산(보후지산)팞이다.
 사진의 하단에 2개의 길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 희게 보이는 좁은 길은 해운대로 가는 국도이며, 그 위 회색의 굵은 길은 미8군 사령부가 이용했던 K-1경비행장 활주로이다. 그 길 중앙 부근이 지금의 도시철도 경성·부경대역이 있다. 사진 가운데 용소마을펃을 지나는 좁고 가는 길⑫은 용호동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이다.
 미8군 사령부에 징발된 옛 수산대학교 전경이 아련하다. 오른쪽은 마을 인근에 용 모양의 늪지대가 펼쳐져 있다는 용소마을이다. 용소마을의 끝자락에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용소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해 온 수령 200여년의 당산목인 장사소나무⑪로 아직도 건재하다. 현재 남구의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천지개벽으로 옛 모습이 깡그리 사라졌건만 소나무만 유일하게 남았다. 격동의 현대사를 모두 지켜본 산증인인 셈이다.
 미군에 징발된 수산대학교 내 큰 건물 3채가 미8군 사령부이다. 그중 2층으로 된 건물이 수산대학교 본관팪으로 사령부 본부로 쓰였다. 거기서 왼쪽으로 떨어진 작고 외딴 건물이 바다 돌로 지어진 벙커형의 작전지휘본부로 사령관 이름을 따서 워커하우스⑬로 불렀다. 수산대학교 앞 해변은 용소해수욕장으로 일대가 매립돼 현재 흔적 없이 사려졌다.
 수산대 뒤로 짙은 숲 3곳이 보이는데, 맨 왼쪽 숲과 건물은 AFKN송신소팣이며, 건너편 흩어진 건물은 지금의 대연자이아파트팤 부지이다, 맨 앞 큰 숲은 지금 대학 내의 송림동산이다. 수산대 본관건물에서 송림동산 앞으로 나 있는 도로 입구가 옛 대학의 정문이고 그 맞은편이 오늘날의 교통방송국과 부산예술회관 자리이다.
 군부대 울타리를 살펴보면, 사령부 본관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지점에 현재 부경대학교 정문이 세워진다. 부대 울타리는 철조망으로 되어 있었는데, 북쪽 울타리를 따라 좁은 오솔길은 현재 향파 이주홍 문학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맨 아래 보이는 야산의 왼편은 큰 부대였던 군수사 자리로 지금은 혁신지역의 아파트가 섰다.
 나라의 운명이 촌각에 달렸을 때, 남구에 조성된 미8군 사령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비장함이 담겨 있다.
글=공기화 남구향토사 연구위원
사진=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드론 촬영=강정흔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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