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home 부산남구신문 > 기획·특집
  • facebook
  • twitter
  • print
기획·특집 (소년을 사나이로 만들어준 대한민국, 그곳에 잠들다)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소년을 사나이로 만들어준 대한민국, 그곳에 잠들다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9/14/ 조   회 134
첨부파일
영국군 참전용사·명예남구구민
故 제임스 그룬디씨 기고문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군인이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전쟁에서 희생된 무고한 한국인들과 전쟁 이후 폐허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군 모든 한국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9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국전쟁 영국군 참전용사이자 명예남구구민인 제임스 그룬디씨가 마지막으로 남구를 방문했던 지난 5월 부산남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유엔기념공원 사후 안장을 앞둔 그룬디씨가 몇 해 전 명예구민 선정을 앞두고 본지에 실은 기고문(제278호, 2019년 4월 1일자 11면)을 다시 게재합니다.

 나는 1931년 6월 22일 영국 맨체스터 에클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은 아주 가난했고, 삶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네 살 되던 해 어머니가 36세의 나이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도 잠시 생활했다. 14세에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18세가 되어서야 농장을 떠나 고향 에클스로 돌아왔고 이후 18개월간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다.
 여러 부대를 거쳐 군 복무를 이어가면서 군대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다. 군 복무 중 조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슬픔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가능하면 군 생활을 더 잘 하려고 노력했다. 군대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평생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18개월 의무 복무기간을 마친 뒤, 나는 직업군인이 되었고 10년을 더 군에서 근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직업군인이 되자마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어떤 나라가 침공을 당해 전쟁이 났는데 그 나라로 파병을 가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1951년 1월 말, 1,000명의 전우들과 함께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이라는 낯선 곳으로 데려다 줄 군함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 배를 타 본 적이 없어 다들 멀미로 고생을 했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서로를 돌봐가며 힘든 항해를 견뎌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가는 여정 동안 19세의 청년 군인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고 앞으로 우리들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자신의 앞날에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긴 항해 끝에 배는 일본의 어느 항구에 닿았고, 배에서 내려 짧은 시간이지만 편하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2월 초가 되어서야 우리가 타고 온 군함이 부산항에 도착했고 그동안 함께 지낸 동료들과 작별을 할 때가 왔다. 이젠 한국에서 어떤 운명이 우리를 기다릴지가 조금씩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부산항에 도착하자 미군 흑인 밴드의 열광적인 음악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조선소에 마련된 환영장에서 커피와 도넛을 제공받았다. 이후 트럭을 타고 3개의 침상에 담배, 커피, 차, 샌드위치 등을 파는 매점이 있는 어느 열악한 부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사흘을 보낸 뒤 다른 부대원들은 다시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지만 나는 그곳에 남으라는 지시를 받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부대장과 면담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부대장은 나에게 인사를 건넨 뒤 앉아서 내가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관해 설명을 했다. 부대장은 "여보게 그룬디, 자네가 꼭 맡아서 처리해줘야 할 일이 있네"라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영국에서 잠시 일했던 장례 업무와 관련된 일이었다. 부대장은 이 임무는 어디까지나 자원하는 것이며 내가 한국에서 맡아야 할 일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일에 필요한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통신장비와 소총을 든 한국인 병사를 소개받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 병사들과 한 팀이 되어 전투 현장으로 향했다. 전투지역에 남겨진 전우들의 시신을 찾아 수습해 오는 일이 우리 팀의 임무였다. 우리는 시신이 묻혀있는 곳이 표시된 지도를 들고 임무를 수행했다. 팀에는 작은 트럭 한 대가 주어졌고 뉴질랜드 병사가 운전을 맡았다. 장비를 챙겨 그 트럭을 타고 3일간 임무에 나섰다. 부산에서 대구 까지 시신을 수습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지역이 너무 넓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모든 지시사항을 숙지한 뒤에 대구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우리는 북한군과 언제 마주칠지 몰라 늘 경계를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 북한군과 그렇게 많이 만나지는 않았다. 초기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 땅이 얼어붙어 시신 수색 작업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날씨가 좀 풀리면 다시 찾기로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지도에는 시신이 남아있는 지역이 20군데 표시되어 있었다. 논이 있는 어느 지역을 수색할 때였다. 3명의 영국병사가 묻혀있는 곳이라는 정보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시신 3구를 수습할 수 있었다. 그들은 5개월 가량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보통 시신에는 신원을 알려주는 수첩이나 군번줄 같은 소지품들이 있기 마련인데, 문제는 시신들의 소지품이 서로 뒤섞여 누구의 것인지 신원 파악이 불가능했다. 수습한 3구의 시신을 부산에 있는 유엔묘지로 보냈는데, 끝내 각자의 이름을 알 수 없어 무명용사로 안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와 우리 팀은 처음 방문했다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지역을 다시 수색했다. 그 결과 미군 병사 1명과 영국군 병사 1명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시신 2구를 깨끗이 수습해 유엔묘지에 안장했는데, 다행히 이들 두 사람의 신원은 파악이 되어 묘비에 이름을 새겨줄 수 있었다. 날이 차츰 풀리면서 우리는 더 많은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소수이지만 북한 병사들도 있었다. 미군도 일부 있었지만 영국 병사들의 시신이 대부분이었다.
 무더운 여름에는 논바닥에서 거품 같은 것이 올라오는데 그곳을 파보면 어김없이 시신이 묻혀있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가 수행한 임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여러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은 영국 병사들을 비롯해 미국, 한국, 북한 등 90구 가까운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다행스럽게 신원 파악이 가능해 묘비에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 복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넘어와 근무를 한 뒤 나는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국에 처음 올 때는 소년이었지만 한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때는 사나이가 되어 있었다. 이후 아내 진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그녀는 200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은퇴한 지금, 30년 넘게 매년 한국을 혼자서 방문하고 있다. 한국에 갈 때면 비무장지대에 별장을 갖고 있는 한국인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부산에 내려오면 유엔기념공원과 멀지 않은 용호동의 수양 손녀의 집에서 머물며 묘역에 잠든 전우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 글을 끝맺기 전에 나는 특별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내가 전쟁 때 맡았던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을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수 년간 도와준 수양 손녀인 브렌다(박은정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대외협력국장)이다. 처음 브렌다를 만난 것은 2006년이었다. 당시에도 브렌다는 유엔기념공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브렌다는 내가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쟁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언급하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내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2010년 브렌다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브렌다와 그녀의 남편과 가족들 모두가 나에게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부산과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그들 집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한국전 영국군 참전용사·남구명예구민·부산명예시민
목록

만족도조사 ㅣ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편의성에 만족하셨습니까?

  • 5점(매우만족)
  • 4점(만족)
  • 3점(보통)
  • 2점(불만)
  • 1점(매우불만)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