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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참전용사 인정 못 받은 응어리, 한국인 배려로 풀려)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참전용사 인정 못 받은 응어리, 한국인 배려로 풀려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4/30/ 조   회 214
첨부파일
"남의 나라 전쟁에 왜?" 참전용사 인정 못 받아
1977년 참전용사협회 결성되면서 고통 치유
한국정부·한국인 존경심, 용사들에 깊은 감명
참전용사 100명 생존 … 후손들이 협회일 승계

네덜란드 참전용사협회(VOKS)
레오 슈뢰더스 사무국장 기고문


 네덜란드는 한국전쟁 때 유엔의 요청을 받고 전투부대를 보낸 국가 중 하나이다. 총 4,747명의 네덜란드 육군과 해군 대원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 중 육군 병사들은 모두 지원병들이다. 이들은 꼭 한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만 싸운 것은 아니었다. 2차 대전 직후여서 이들 중 일부는 직업이 없거나 돈이 필요했다. `모험'을 원한 이도 있었다. 더욱이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네덜란드에서 직업 군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에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부산에 도착한 네덜란드 병사들은 반호이츠연대(Van Heutsz Regiment)에 배속되었다. 이 부대는 덴 오우덴 중령이 지휘했다. 네덜란드 참전 부대는 `유엔 파견 네덜란드 부대(NDVN)'로 불렸다. NDVN 소속 네덜란드 군인 123명이 한국전쟁에서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쟁은 끔찍하지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비록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1953년 7월 휴전 후 군인들이 돌아왔을 때, 이들의 희생을 이해하는 네덜란드 국민은 거의 없었다. 왜 지구 반대편 나라의 전쟁에 자원하는 가를 말이다. 이 때문에 참전용사들은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한국전쟁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주위로부터 이해나 인정을 받지 못했고 많은 참전용사들은 악몽과 심리적 문제로 고통을 받았다.
 한국전쟁에서 싸운 군인 중 택 대위와 슈뢰더스 중위가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두 사람은 군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갔고 각각 장군과 대령으로 은퇴했다. 퇴역 직후, 택 장군과 슈뢰더스 대령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네덜란드 군인들이 모일 협회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협회는 1977년 결성되었는데, 그게 바로 VOKS로 알려진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이다. 1200명이 넘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모였다. 전사했거나 부상당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행사와 상봉행사가 마련됐고 이러한 만남이 진행되는 동안 사내들은 마침내 집에서조차 말하지 못한 그 끔찍한 전쟁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반호이츠연대는 헤이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및 한국의 국가보훈처(MPVA)와는 처음부터 우호적인 접촉을 가졌다. 수많은 네덜란드 참전용사들은 전쟁 이후 한국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한국 국민들이 우리 참전용사들에게 보여준 존경심은 압도적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없던 그 `존경'을 한국에서 찾은 것이다. 한국 방문에 필요한 비용 대부분은 한국정부가 부담했는데 이는 노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전우를 추모하는 열망은 여러 개의 기념비를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1959년 12월 19일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도시 외르스호트(Oirschot)에 세워진 한국전쟁기념비이다. 이 기념비는 한국전쟁에서 사망하거나 실종, 부상당한 `유엔 파견 네덜란드 부대(NDVN)'의 모든 군인들을 상징한다. 매년 이 기념비 앞에서 추도식이 열리는데 NDVN에 배속돼 함께 싸우다 죽거나 다친 한국군 카투사들도 함께 추모된다.
 1982년 2월 12일 로센달(Roosendaal) 병영에 또 다른 기념비가 세워졌다. 1982년부터 매년 2월 12일, 네덜란드 부대가 강원도 횡성 인근 야산에서 벌인 가장 큰 전투를 기리는 추모식이 여기서 열린다. 횡령전투에서 덴 오우덴 중령을 포함해 17명이 매복한 중공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많은 기념행사 장소들 가운데 특별한 곳이 있다. 바로 헤이그에 있는 이준평화박물관(이준열사기념관)이다. 이준은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견된 한국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이준은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이고 일본의 침략은 불법'임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07년 7월 14일 의심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그는 헤이그에 있는 니유 에이켄두이넨 묘지에 묻혔다가 1963년 9월 26일, 시신이 한국으로 옮겨져 재안장됐다. 1977년 7월 14일 그의 70번째 사망일에 니우 에이켄두이넨에 묘지에서 그의 기념비가 공개되었다. 이준이 사망한 호텔에는 현재 이준평화박물관이 있고 매년 7월 14일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참전용사협회 대표단은 항상 그 특별한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네덜란드 한국대사관과 국가보훈처와의 협력은 훌륭하다. 재방한도 정기적으로 이뤄져 네덜란드 참전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대한민국 대사가 국방부 최고위직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기념행사에도 참석한다.
 매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열리는 재향군인 초청 행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참전용사의 숫자가 계속해 줄고 있지만, 매년 100명 이상의 참전용사들이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생존 참전용사의 규모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이들의 연령은 현재 85세에서 100세 사이이기 때문이다. 현재, 103명의 생존 참전용사들이 VOKS 회원으로 있다. 협회는 148명의 기부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자녀 혹은 손주들이다.
 택 장군과 슈뢰더스 대령은 몇해전 세상을 떠났다. 현재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너무 고령이 되어 VOKS 이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몇년 전 나를 포함해 참전용사 자녀 몇 명이 이사회를 맡는 아이디어를 냈다. 협회는 마지막 한 명의 참전용사가 떠나는 그날까지 유지될 것이다.

*남구는 레오 슈뢰더스 사무국장의 요청으로 기고문의 원고료를 네덜란드 참전용사협회(VOKS)로 보냅니다. 슈뢰더스 사무국장은 네덜란드 참전용사협회를 창립한 L.C. 슈뢰더스 대령의 아들입니다.

2019년 네덜란드 로센달에서 열린 한국전쟁 추모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네덜란드 참전용사들.

유엔기념공원 내 덴 오우덴 중령 묘비. 120명의 네덜란드 참전용사들이 남구에 잠들어 있다.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협회(VOKS)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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