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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남구의 1980!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11/16/ 조   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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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도시의 `성쇠' 다시 우암의 도약 꿈꾼다

응답하라, 남구의 1980!

 우암초등학교(큰사진 왼쪽 4층 건물) 주변 사진은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확장 개설하는 모습이다. 1959년 개교한 우암초등학교는 산업화시대 한 반에 60∼70명씩, 한 학년 8학급에 전교생 3,000여명이었지만, 지금은 한 반에 25명, 한 학년 2∼3학급으로 줄었다. 올해 졸업생은 52명에 불과했다. 우암동 인구가 많을 때 인근 신연초등학교, 성천초등학교 2개 학교가 추가로 신설되었지만, 학생이 줄어 내년부터 신연초등학교는 당분간 휴교할 예정이다.
 한때 넘쳐나는 인구로 우암초등학교 조금 지나 현 양달마을 자리에 동원극장이라는 2편 동시상영 영화관도 있었다. 생일날 짜장면 한 그릇 사 먹고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동원극장은 240석으로 1962년 개관 1980년 문을 닫았다. 재래시장인 구시장이 장사가 너무 잘돼 새시장도 새로 생겨 가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쇠퇴해 문 연 곳이 몇 가게 되지 않는다. 현재 우암동은 지역 내에 산재해 있던 공장의 쇠퇴와 인구 감소로 인해 늘어가는 빈집과 갈수록 시들해지는 주거지 풍경은 우암동의 오늘을 말해 준다. 예전 같은 활기는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소막사 주변에는 빈집이 너무 많다.
 소막사가 주거시설로 변용된 근대건축 유산으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제715호:2018년 5월)가 되었고, 소막마을 주택을 복원해 지난 6월 준공해 현재 전시관, 주민 커뮤니티실, 야외전시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막마을은 6·25전쟁 피란민의 삶의 증거로 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9개의 등재 대상물에 포함되어 있다.
 전쟁 발발과 함께 부산은 가장 안전한 피란처이자 임시수도가 됐다. 우암동에 피란민을 수용한 적기수용소가 있었다. 전쟁 이후 산업화 시대에는 우암동에는 다양한 공업시설들이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일자리가 넘쳐나는 곳이었으며,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우암동 뒷산 경사지 위 빈 곳에는 이주민들의 판잣집이 들어서며 인구가 넘쳐나는 산동네, 달동네를 형성해 갔다. 1960∼80년대 많은 공장지대의 노동자들로 활기와 함께 생기 넘치는 동네가 되었다.
 지금은 우암동 뒷산인 우룡산에 있던 공동묘지 450여 기를 이장해 철쭉을 심어 도시숲공원을 조성하였고 육각정 정자를 비롯하여 경사지에 LED 데크, 달 조형물 등 야간경관이 좋아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다. 올해 해돋이 행사와 제7회 철쭉제 행사도 열었다. 근래 들어 재개발로 우암동은 다시 한번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우암초등학교 뒷산 부근에 재개발 1구역 2,500여 세대, 재개발 2구역 3,000여 세대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 중이다. 입주가 완료되면 우암동에도 다시 활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1982년 우암초등학교 주위 모습.
드론 촬영=강정흔 주무관
공경식
소막마을공동체 사무국장·우암동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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