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home 부산남구신문 > 기획·특집
  • facebook
  • twitter
  • print
기획·특집 (응답하라, 남구의 1980!)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응답하라, 남구의 1980!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10/27/ 조   회 69
첨부파일
(4)남구 토지개발과 대연동의 변신

 1980년대 한 장의 사진에서 남구 개발의 축약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칠고 황량한 산(황령산)'에서 찍은 대룡골부터 멀리 용호동까지 보이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가운데 긴 둑과 다리처럼 보이는 것이 공사 중인 번영로 일부인데, 부산항에서 우리나라 최대 동맥인 금정구의 경부선으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위 사진의 핵심인 대동골이라 불리는 대룡골마을은 대연동의 가장 오지였다. 황령산 자락에서 1960년대부터 젖소를 기르기 시작한 낙농부락이었다. 슬금슬금 위로 올라오는 주택가 사이에 제약회사의 모습이 보인다. 1960년대 초까지 대연초등학교 가을소풍 장소로 대룡골을 지켜왔던 작은 암자가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 아래에 주택가 사이에 군수사가 아직도 이전 장소를 정하지 못했는지 버티고 서있다.
 남천동에는 이미 바닷가에 아파트가 서 있고, 용호동도 토지개발이 진행되어 논과 염전에도 주택이 가득하다. 바다에는 용호동 동국제강 쪽과 대연동 부경대학교 앞에는 바다의 매립공사를 하고 있어 대대적으로 진행된 토지개발의 모습이 무섭다.
 또 다른 사진은 1980년 하나은행 대연동지점 쪽에서 시온치과 방향으로 찍은 대연동 부산은행 사거리의 모습이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 우마차와 코로나 택시가 혼재되어 누비는 거리의 모습은 한국 근대화 모습의 일면을 보는 것 같다.
 사진 속에는 주택연구소, 목재점, 철물점, 페인트 가게가 있는 것을 보아 주택 개량이나 신축공사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법 인구가 많아졌는지 국제수퍼마켓이 서 있고, 가구점이 여럿이 서 있다. 그리고 당구장과 탁구장이 있는 것을 보아 주민의 소득과 삶의 질이 나아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전문 가구점 끝에는 옛 반갯등(지금의 가스충전소) 근처에서 오랫동안 진료해 온 진화이비인후과가 있다.
 1965년부터 지역 발전에 지장이 된 고개를 낮추고, 좁은 길을 넓히고, 논이나 작은 구릉을 정비하여 도로를 만들고 주택을 지어 지역 발전을 꾀하려 했다. 남구의 토지개발사업은 대단했다. 이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대연동의 이름이 유래된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생천언(生川堰)이란 큰 연못은 메워지고, 넓은 용주벌이 거대한 주택가가 되었다. 이때 지어진 커다란 주택 때문에 대연동이 도둑촌이라 불리기도 했다.
 도시는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이다. 남구에서 수영구가 분구되어 대연동에 남구청 청사가 세워지고, 토지개발로 인구가 늘면서 기존의 못골, 대연시장에 못골골목시장이 더해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대로변을 따라 못골시장에서 남부산농협까지 은행, 병원, 사무실과 상점이 들어서면서 남구의 중심이 되었다.

공기화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대연동 주민
목록

만족도조사 ㅣ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편의성에 만족하셨습니까?

  • 5점(매우만족)
  • 4점(만족)
  • 3점(보통)
  • 2점(불만)
  • 1점(매우불만)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