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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6.25 발발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전과 스웨덴 사람들을 보고 나서)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6.25 발발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전과 스웨덴 사람들을 보고 나서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0/01/03/ 조   회 268
첨부파일 5-2cw20.jpg (246 kb)

[6.25 발발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전과 스웨덴 사람들을 보고 나서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지난 12월 2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다큐멘터리 `한국전과 스웨덴 사람들 `상영회가 마련됐다. 사진은 영화 상영에 앞서 가진 기념촬영. 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라르스 프리스크 스웨덴 국군영화재단이사장(다큐 기획자), 김준이 씨(스웨덴병원 환자), 뢰벤 총리, 캠벨 에이시아 양, 김학태·조군자(환자) 씨, 김옥순(당시 간호사) 씨, 이낙연 총리, 야콥 할그렌 주한스웨덴대사, 맨 오른쪽은 김낙규(당시 병원 X-레이기사) 씨.

 

이방인이 기록한 부산 이야기, 정작 우리는 …

 

 푸른 눈의 노병이 전투화를 들어 보인다.
 호호백발 할아버지는 야전 신발을 애지중지하였다. 눈앞에서 총알받이가 된 전우 덕에 생명을 부지한 노병은 낡았지만 잘 손질한 워크화를 손자에게 물려준다고 했다. 한국전쟁 중 의료진을 파견한 스웨덴 다큐 영화 속의 한 장면이다.
 스웨덴은 한국전 당시 의료지원 6개국 중 가장 먼저 의료단을 파견했다. 1124명 참전 주인공 중 생존자가 50여 명에 그치는 안타까움으로 스웨덴이 영화제작에 나선 것이다. 지난 12월 20일엔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양국 총리 참석 하에 `한국전과 스웨덴 사람들'의 영화 행사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앞서 10월 부산에서 다큐멘터리 민간인 첫 시사회가 있었다.
 1950년 9월 유엔군의 부산탈환직후 150명의 스웨덴 의료단이 부산항에 도착한다. 6년7개월동안 야전병원에서는 국군은 물론 연합군 심지어 중공군과 북한군 포로병까지 치료를 했다. 훗날 북한 부상병이 스웨덴국왕에게 보낸 감사 편지도 소개되었다. 치료를 받은 민간인도 200만명 가량이나 된다. 휴전후에도 서울에 의료센타를 건립하여 치료뿐만 아니라 기술전수도 하였는데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신이다.
 당시 치료받은 국내의 환자들이 화면으로 상영되자 당사자들은 눈시울을 글썽였다. 그들이 아니면 생명을 부지했겠느냐고 큰절을 올렸던 80대 할아버지, 이분은 골수염으로 매일 뼈에서 고름이 멎지 않아 하마터면 다리를 잃을 뻔했다. 너무 아파서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야전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대학에서는 배구선수로도 활약했다.
 교장 출신 할머니는 60년 전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한다 "16세 때 폐결핵으로 치료를 받던 중, 병원이 떠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금발의 군의관이 스웨덴에서 1년간 매달 약을 보내줬어요"고 고마움을 못 잊어했다. 그 의사를 찾으려고 스웨덴까지 갔으나 보지를 못 해, 꼭 만나고 생을 마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는 단순한 의료지원의 기록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전시상황과 인해전술로 중공군이 밀려오던 장면 등 급박하고 생생한 야전상황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총알이 쏟아지던 현장을 참전용사들이 육성으로 들려주었다. 다급한 현실에 간호사들은 의사의 지시도 없이 몸에 박힌 총알을 뽑았고, 의사들은 전염예방을 위해 포로들의 옷을 다 벗기어 태웠다,
 병원부지인 옛 부산상고에 첫발을 디딜때 뽀얀먼지로 밀가루를 흩어 놓은 듯 했다. 지원단의 증언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우리의 과거이다. 그병원의 옛터에 롯데호텔등 빌딩이 들어선 서면일대를 방문한 노병들의 입에서는 주변의 변화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영화 행사에 앞서 스테판 레벤 스웨덴 총리는 "한국은 전후 놀라운 변모를 거듭했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경제 강국이자 민주국가의 롤모델이 됐다"평가했다. 야콥 할그렌 주한스웨덴대사는 이 영화 제작이 있기까지 부산 남구청과 관련 직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상영이 끝나고 "너무나 감동적이다"는 뒷좌석의 평가가 귓전을 스쳤다. 몇몇은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있었다. 잊고 지냈던 아픈 상처와 도와준 저들에 대한 빚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상영도 되기 전에 우리나라 총리를 따라 보훈처 차장 등 관련 공무원들은 모두 자리를 떴다. 영화관에 와서 정작 영화는 보지 않고 축사와 기념촬영만 하고 빠져 나갔다. 반면 부산을 보살펴준 외국의 총리는 영화를 끝까지 목도하고 초청 관객이 모두 빠져나간 뒤 맨 마지막에 건물을 나섰다. 부산시민이 참여하고 부산의 역사가 소개되는 행사장이기도 했다. 그곳에 부산시장은 보이지도 않았다.
 다큐에 출연한 상당수 의료진들이 영화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는 이야기를 대사관 측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중 커스틴 요나손 여사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돌아가셨는데 그 기부금 중 일부인 11억 원이 우리 KAIST에 전해졌다. 우리의 과거를 알기위해 또 다른 노병의 전투화를 보러가야 할 것인가. 언제까지 담 너머 우리집 호박을 이웃이 거두어 주어야 할런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명래
반구대포럼 이사 / 부산남구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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