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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캠벨 에이시아의 평화를 찾아서)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캠벨 에이시아의 평화를 찾아서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19/04/03/ 조   회 794
첨부파일 에이시아2.JPG (5983 kb)
에이시아3.JPG (194 kb)

캠벨 에이시아의 평화를 찾아서

캠벨 에이시아의 평화를 찾아서

▲ (위) 6·25때 네덜란드 반호이츠 부대에 배속된 한국인 카투사 대원들의 모습이 담긴 네덜란드 기록물. 원 안이 광주의 박복술 카투사 대원으로 네덜란드 이름인 딕(Dick)이 표시되어 있다.

▲ (아래) 에이시아와 박복술 참전용사의 딸인 박지은 할머니.


평생 처음 불러보는 이름, 아버지!
70년 만에 사진으로 재회한 부녀

 `넓은 책상 위를 메운 270장 사진 속의 젊은 군인 아저씨들. 누군가의 아들, 오빠, 형, 동생일텐데, 이 분들 중 박지은 할머니의 아버지가 있었으면…'.
 지난 2월 13일, 아직 창밖은 깜깜한 새벽 5시, 책가방 속의 사진이랑 파일북을 다시 확인하고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은 먼 광주로 향했다.
 나는 작년 8월10일부터 네델란드 참전용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 전쟁 동안 네델란드군(NDVN)과 함께 싸우다 돌아가신 한국 카투사대원 20명의 이름을 찾고 있다. 그러던 중 한 명의 유가족이 광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복술 이등중사의 딸, 박지은 할머니이시다. 아버지의 사진 한 장 없이,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우셨을까? 내가 가진 사진 속에서 할머니의 아버지를 찾길 바라며 활짝 열린 대문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나아갔다.
 내가 가져 온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고, 또 보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핏줄이라 사진을 보면 금방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모르겠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버지는 반곱슬머리에 가르마가 옆으로 나 있고 멋진 분이셨다고 하셨어." 할머니는 꼼꼼하게 보신 사진도 다시 보시며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오빠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진 속에서 오빠를 닮은 젊은 군인을 찾느라 애쓰셨다.
 할머니가 아버지인 박복술 참전용사님과 헤어진 것은 100일 정도 된 아기였을 때라고 하신다. 그때 경찰이었던 박복술 참전용사는 가족을 산 속에 피신시키고 군에 자원하셨다.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난 뒤 박지은 할머니가 8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유골이 되어 돌아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8살 어린이었던 그 때를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할머니의 할아버지는 아들의 유골인지 확인하기 위해 국군아저씨가 들고 온 항아리를 엎어 뼈 속에 있던 금니를 보고서야 아들의 죽음을 믿게 되었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아들(박복술 참전용사)의 사진 두 장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니셨는데 어느날 지갑을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탱크 앞에 있는 사진과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이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어머니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너무 안타까웠다.
 평생 아버지를 불러본 적이 없는 게 한이 됐다는 할머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나와 엄마는 그런 할머니가 슬퍼하실까봐 울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떴다.
 박복술 참전용사님의 사진을 끝내 찾지 못하고 사진들을 남겨 둔 채 우리 가족은 다시 부산으로 왔다. 나와 함께 한국인 카투사를 찾고 있는 네델란드의 빌럼 아저씨에게 이메일로 광주에서 만나 할머니 이야기를 알려주고 박복술 참전용사님을 찾을 수 있게 한 번 더 부탁을 했다. 그러고 한 달 가량 지나, 빌럼 아저씨로부터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 왔다. 박복술 참전용사에 관한 기록과 복사된 사진을 찾은 것이다.
 전쟁 때 네덜란드 군인들은 자신들을 돕던 한국 카투사들에게 네덜란드식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박복술 참전용사님을 `딕(Dick)' 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박복술님은 195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T-bone고지 바로 아래의 `Uncle'이라는 곳에서 T-34/85 탱크의 포탄 파편을 맞고 전사하셨다고 한다.
 박지은 할머니에게 그 복사된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냈는데 할머니는 오빠랑 꼭 닮은 아버지를 확인했다며 기뻐하셨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이제 조금 풀렸다"며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빌럼 아저씨는 원본 사진도 분명 어디엔가 있을 거라며 계속 수소문해 보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돌아가시진 70년이 된 20명 카투사들 이름을 찾는 것도, 박지은 할머니의 아버지 사진을 찾는 것도 힘들 거라고 다들 말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큰 소망을 이루어냈다. 나는 앞으로 남은 7명의 이름도 찾고, 참전용사님들의 기억 속에 대한민국이 따뜻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들 마음 속에 참전용사님들의 큰 사랑이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캠벨 에이시아(본지 명예기자·용문초 6학년)


○ 캠벨 에이시아는 누구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용호동 용문초등학교 6학년.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는 고령의 유엔 참전용사들과 나이와 국경울 초월해 우정을 쌓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네덜란드 참전용사협회의 부탁으로 6·25 때 네덜란드 부대를 돕다 전사한 한국인 카투사 20명의 명단 찾기에 나서 최근 13명의 카투사 명단을 찾아내 네덜란드 참전용사협회에 보냈다. 이번에 찾은 광주의 박복술 참전용사는 13번째 카투사 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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