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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빈센트 커트니의 Freedom is not free)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빈센트 커트니의 Freedom is not free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2/12/30/ 조   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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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흘러도 잊히지 않는 후크고지의 겨울


 그날 오후 소년들은 긴장했다.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 소총 총알을 모닥불 속에 던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트럭에 올라탔다. 험한 길을 15분쯤 달려 전방에 도착했다. 고지 아래, 벙커 옆에서 박격포팀을 맡고 있던 캐티건 상병이 우리를 안내하며 속삭였다. "여기는 쥐처럼 조용해."
 우리는 전투에 참가한 이후로 적들의 시체가 없어져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일주일 전에 떠났을 때 고지와 외곽 능선에 시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개방된 비탈을 오르는 일은 고작 1분밖에 안걸렸지만 숨이 막혔다. 우리는 완전한 대열을 유지하며 모든 장비를 등에 짊어지고 허리에 탄창을 찬 채 언제든 사격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번에 보급 받은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갔다.
 우리는 부츠 신은 발로 더듬으며 걸어야 했다. 우리는 고무창이 달린 새 영국산 방한 부츠를 신고 있었다. 참호 안으로 흩어져 조용히 대기했다. 영국 블랙워치부대에서 온 순찰대원 8∼10명이 근처 높은 고지를 천천히 내려왔다. 그들은 몸을 떨면서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고 곧이어 우리 참호로 들어왔다. 막상 참호에 들어오자 그들은 활기를 띠었다. 아마도 이들은 우리 동료들이 죽어간 그 고지에서 내려 온 듯 했다. 내 전우 몇몇도 그때 전사했다.
 몹시 추웠고, 고지 위의 공기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넓고 어둑한 평원을 가로질러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차갑고 젖은 구슬이 볼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은 빨라졌고 갈수록 추워졌다.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날은 더욱 어두워졌다. 급기야 비가 홍수로 변했다. 곧이어 진눈깨비가 젖은 비와 섞여 내리기 시작했다. 진눈깨비는 작은 얼음 눈송이로 변했고 얼마 안 있어 우리 얼굴에 수직으로 박혔다. 30분 만에 눈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이가 덜덜 떨렸고 발을 동동 굴렀다. 영국산 새 겨울부츠를 신었는데도 추위로 발이 아려왔다. 곧이어 토론토 출신의 번 콜 하사가 참호를 따라 나타났다. 그는 물을 탄 럼주로 가득 찬 캔 2개를 어깨에서 내던지며 "한 잔 크게 들이켜"라고 말했다.
 동이 트기 전, 참호 바로 아래에 있던 그린 일병이 몇 걸음 걷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코르코사의 점프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가죽이 흠뻑 젖어 얼어붙었다. 동이 트자 그를 대피시켰고 외과의사는 그가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의 발가락들을 절단해야 했다. 침묵으로 얼음 붙은 그날 밤, 적들은 우리 전우들을 죽였고 우리 역시 그랬다. 우리는 그곳에서 2주간 더 머물렀고 더 많은 동료들이 죽어갔다. 그때의 적막과 냉기는 지금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이번 한국의 겨울은 70년 전의 겨울과 비슷해 보인다. 그때 우리가 만났던 진짜 겨울 말이다. 살아남는 이들은 여전히 그날 밤과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심장에 박힌 그 냉기는 그 어떤 행복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했고 미소나 웃음도 짓지 못하게 막았다. 즐거움도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가까운 가족들조차 살아 돌아온 우리들을 이상하게 느꼈다. 그날의 악몽은 생존한 참전용사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좌절시켜 버렸다.
 우리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고립되었고 영혼의 외로움을 느꼈다. 묵묵히 세월을 보내면서 늘 동지들의 심장 박동을 감지했다. 그 언덕은 오늘 이 순간까지도 정적에 쌓인 채 얼어 있다. 캐나다 유엔 참전용사·
부산남구신문 명예기자

※ 빈센트 커트니씨의 건강상의 이유로 `Freedom is not free'는 이번 호를 끝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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