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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김성한의 남구 멘토에 길을 묻다)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김성한의 남구 멘토에 길을 묻다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2/01/ 조   회 108
첨부파일
"이케아 같은 K-목공예 브랜드 만들고 싶어"
40여년 목공예 외길, 국내 유일 목조각 명장
대작은 5000만원 상회, 작품 90% 일본 수출
가업 승계 둘째아들 목공예에 첨단기술 결합

 옷과 머리에 톱밥을 덮어 쓴 채 작업실을 나오는 모습이 흡사 한바탕 전투를 치룬 장수 같다. 그런 모습이 스스로 겸연쩍은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먼지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허허."
 유엔평화기념관 인근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광안공예연구소에서 김규영 명장을 만났다.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 연구소 외벽에는 `誤來偸眼雀應嗔(오래투안작응진·참새도 진짜인 줄 알고 속아 투덜댄다)'라는 어려운 글귀가 편액되어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기행문 `서해연어(西海旅言)'에 나오는 말이다.
 김 명장은 지난 2016년 목칠공예 대한민국 명장 제613호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명장은 37개 분야 97개 직종 가운데 기술 발전과 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자에게 주어지는 기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예다. 대한민국 명장 증서와 휘장, 대통령 명의의 명장패 그리고 2,000만원의 일시장려금이 주어진다. 현재 총 683명이 배출됐다. "목칠공예 명장은 국내 10여명 있는데 목조각 분야는 제가 유일합니다."
 김 명장의 목공예와의 인연은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비롯됐다. 목수였던 부친은 어린 아들에게 나무 장난감들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을 가지고 놀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단칸방에 일곱 식구가 살 만큼 생활은 궁핍했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는데 저의 형편을 보시고는 학비가 무료인 국립 부산공예고(현 용호동 소재 한국조형예술고) 진학을 권유하셨습니다."
 조형예술고 진학 후 남다른 끈기와 재능으로 고3 때 제11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목공예부문 금메달을 받았다. 그 즉시 일본인이 운영하는 해운대의 목공예 공장에 스카웃돼 열아홉 나이에 공장장을 맡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현의 시골마을 야메(八女)시에 있는 본사에서 1년 6개월간 근무하며 기량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경제 발전으로 일반 가정집마다 개인 불당을 놓는 게 붐이 생겨 목공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요."
 그러다 10여년 동거동락했던 부산의 일본 목공예공장이 국내 인건비 인상 등으로 1987년 폐업을 하게 되었다. 이 무렵 광안리에서 철물점을 하던 장인 가게를 인수해 직접 목공예 공장인 광안공예사를 차렸다. 광안공예사는 광안공예연구소로 이름을 바꿔 2015년 12월 용당동에 건물을 신축해 옮겨 왔다.
 다행히 일본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현재 광안공예연구소의 매출액 90%는 일본 수출에서 나온다고 한다. 주요 일본 거래처만 21곳. 일본 사찰의 창건설화나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목조각 주문이 많은데 작품 당 5000만원이 넘는 대작이 주를 이룬다. 김 명장은 목공예는 원재료비 비중이 가장 낮은 산업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5,000만원 작품에 들어가는 나뭇값은 5%인 250만원 남짓입니다. 이만한 수출 효자상품이 또 어디 있겠어요?"
 김 명장은 목공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나무에 영혼을 불어넣는 `감성'을 꼽는다. 그의 목조각 스타일은 선 굵은 디자인에 자신이 개발한 도구를 활용한 빠른 스피드가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강점이다.
 광안공예연구소는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소공인'으로 남구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현재 둘째 아들 유석씨가 가업승계를 위해 김 명장 아래서 목공예를 익히고 있다. 유석씨 역시 2017년 부산시 기능경기대회서 목공예 부문 금메달을 딴 실력파다. 아버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MZ세대답게 레이저각인과 CNC조각 등 첨단기술을 입혀 목공예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김 명장은 "한국은 목공예에 있어 유구한 역사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스웨덴의 이케아처럼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의 목공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산남구신문 편집장

김규영 명장과 아들 유석씨가 일본 후쿠오카 사찰로 보낼 봉황을 조각한 오동나무 편액을 살펴보고 있다.

김규영 명장의 공예품은 장난감의 프라모델처럼 따로 조각한 뒤 합체하는 것이 특징이다. 통으로 조각하는 것보다 섬세하고 시간이 흘러도 뒤틀리지 않게 된다.

목공예에 쓰이는 다양한 목재들이 서가에 꽂힌 책처럼 놓여 있다. 붉은빛이 도는 러시아 홍송이 조각하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광안공예연구소의 작업실 난로 옆에 앉은 김규영 명장. 조각하고 남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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