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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유현의 부산 유물이야기)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유현의 부산 유물이야기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1/02/ 조   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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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개관 도운 금동보살입상


 1979년에 국보로 지정된 부산박물관 소장 금동보살입상(34㎝)은 통일신라시대(후기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된 부산의 대표 유물이다. 삼국시대의 예술이 고구려, 신라, 백제 각국의 독창성과 개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면 통일신라에 이르러서는 예술작품에 균형감과 자신감을 표현한 사례가 많다. 금동보살입상도 정면을 향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가 그지없으며, 이러한 당당한 신체 표현 속에 품위와 자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에 이름을 붙이는 데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보통 재료, 내용, 형태의 순서로 명칭을 정한다. 이 문화재는 청동을 주재료로 금으로 도금(금동)하였다. 또 주인공이 부처가 아니라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수도하는 중생(보살)이고 모양새가 서 있는 자세(입상)를 취하고 있어 명칭이 `금동보살입상'이 되었다.
 금동보살입상이 남구에 자리 잡기까지의 이야기는 부산박물관의 설립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부산시는 유엔기념공원 입구 주택지 1만평 매입을 시작으로 1978년 전국 최초로 시립박물관을 건립, 개관했다. 당시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 시도한 도전이었기에 난관이 많았다. 특히 전시할 문화재를 사전에 확보하지 않은 채 박물관 건립공사부터 추진한 유일한 사례라고도 한다. 부산시는 박물관 건립과 함께 이런저런 문화재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시립박물관을 대표할만한 상징적인 문화재가 필요했다. 결국 국보급 문화재인 이 금동보살입상을 먼저 물색한 후 부산의 기업인과 미술품 소장자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했다. 당시 부산시는 이 정도 수준의 문화재를 구입할 예산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유물 소장자가 매도를 거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산시의 이런 고민을 고 김지태 회장은 잘 파악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조선견직과 범표 삼화고무를 이끈 지역의 대표 기업인으로 마침 박물관후원회장도 맡고 있었다. 김 회장은 "뒷방 늙은이로 살아가는 나를 난데없이 불러서 후원회장 감투까지 씌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내가 명색이 후원회장인데 내놓을 유물이 없으니 부산시에서 하나 찾아 알려 주시오"라고 먼저 제안을 해왔다. 이로써 금동보살입상 전시 준비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결국 부산시는 유물 소장자를 설득하고, 김 회장은 1억원에 가까운 거금을 쾌척해 유물을 구입한 후 부산시에 기증하고, 부산시는 곧바로 문화재관리국에 신청해 `국보 200호'로 지정받으면서 부산의 대표 문화재 확보 작전은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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