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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학교 역사에 격랑의 현대사 100년이 오롯이 각인)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학교 역사에 격랑의 현대사 100년이 오롯이 각인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2/11/01/ 조   회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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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주년 맞은 대연초등학교

1922년 대연강습회로 시작 … 일제 때 강제통합 수모
6·25때 미군에 징발 … 60년대 화재로 학교 건물 전소
지난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지정돼 리모델링 앞둬

대연초등학교가 100주년을 맞았다. 글자 그대로 `백년대계'를 이룬 셈이다. 남구에서 개교 100년이 넘은 학교는 감만동 동항초등학교(1919년 개교)에 이어 두 번째다.


 대연초등학교의 시작은 1922년 4월 1일 대연교회 정창희 전도사가 지금의 못골시장 인근(대연동 1530번지)에 대연강습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작은 교실 2곳에서 한문, 한글, 수학, 예절, 과학, 위생 등 근대 교육을 가르쳤다.
 1925년 4월 1일 지금의 용호현대비치아파트와 LG메트로시티아파트 사이(용호동 174번지)에 작은 교실 4칸과 교무실 1개를 가진 동명학원이 설립됐다. 4년 뒤인 1929년 4월 1일 대연동 대연강습회와 용호동 동명학원가 통합해 6년제 사립용연보통학교가 출범하면서 대연초등학교의 기틀이 세워졌다. 학교 명칭인 `용연(龍淵)'은 학교 설립에 참여한 용호·용당·대연동 3개 마을을 의미한다. 학교 통합으로 동명학원 건물은 훗날 1950∼1953년 대연초등학교 분교로 이용되었고 이후 1950년대까지 용호동 지역 야학으로 활용되다가 폐쇄되었다.
 사립용연보통학교는 반개등으로 불리는 지금의 도시철도 대연역5번 출구 인근(대연동 987번지 일대) 언덕에 교실과 교무실, 교장 사택, 창고 등을 건축해 개교했다. 당시 대연동 4개 마을(못골, 용소, 석포, 당곡)과 용호동, 용당동에서 통학을 했다고 한다. 남구 지역 최초의 6년제 보통학교로 비로소 체계적인 근대교육이 실시됐다.
 학교가 설립된 지 8년 뒤인 1937년 조선총동부의 조선인을 일본인화하는 황국신민화 정책으로 한국인 교사를 모두 해임하고, 일본인 교사가 있는 성지보통학교에 강제 합병당해 분교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1940년 교명을 부산대연공립심상소학교로, 이듬해 부산대연공립국민학교가 다시 바꾸면서 교내에서는 일본어로만 말하고, 일본역사를 국사로 가르치는 황국신민(皇國臣民) 교육이 실시됐다. 1942년 3월 31일 사립용연보통학교는 강제 폐교를 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는다. 이때 일본인 교사들이 학교의 모든 서류를 파기하는, 교육자로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바람에 사립용연보통학교와 대연공립국민학교에 대한 수십년 기록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해방 직후 교원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검정고시를 쳐서 남구 주민들이 교사로 많이 채용되었다. 일본에서 귀환동포들이 몰려와 대연고개, 감만동, 우암동에 거주하게 되면서 이들의 자녀들이 대연초등학교에 다니게 돼 학생 수가 크게 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학교 운동장이 미군에 징발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 건물 옆 고려시대 무덤이 있던 솔밭에 가건물을 지어 공부해야 했다. 또 용호동 분교(옛 동명학원 건물)에서도 일부 분산돼 수업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 10월 대연동 반개등 언덕에서 현재의 학교 부지로 옮겨 왔다. 미공병부대가 `ㄷ'자 모양의 단층 목조건물을 교사로 건축해 줬다. 하지만 10년 뒤인 1965년 1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학교 건물이 모두 전소되는 일이 발생한다. 재학생들은 수산대(현 부경대 대연캠퍼스) 빈 강의실과 학교 뒷산을 전전하다 운동장에 천막을 쳐 공부해야 했다. 지금의 학교 건물은 1966년 9월 신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연초 100년사' 집필을 주도한 공기화 부산교대 명예교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연초등학교에 불이 나 어린 후배들이 졸업식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복동에서 교단 테이블보를 2000원에 사서 학교에 기증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명칭이 일제강점기 황국신민학교에서 유래됐다는 사회적 문제 제기로 대연국민학교는 1993년 11월부터 대연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지난해 노후된 학교건물을 미래학교로 탈바꿈하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정부 사업에 선정돼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 대연초 100년 발자취

1922. 4.1 대연강습회 설립
1925, 4.1 동명학원 설립
1929. 4.1 6년제 초등학교 사립용연보통학교 개교
1935. 3. 사립용연보통학교 제1회 졸업
1941. 4.1 대연공립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1942. 3.31 사립용연보통학교 폐교
1965. 1. 화재로 교사 전소
1966. 9. 현재 교사 신축
1972. 6.10 전국야구협회장배 우승
1993. 11.1 대연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2007. 11.23 인조잔디 운동장 준공
2012. 2.15 제70회 졸업식(누계 3만2,057명)
2021. 3.1 그린스마트미래학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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