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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유현의 부산 유물이야기)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유현의 부산 유물이야기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9/18/ 조   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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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천성진성, 조선 수군의 마지막 흔적

유현의
부산 유물이야기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2년 9월 1일(음력),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은 부산포해전에서 큰 승전을 거두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끌었던 조선 수군의 여러 전승 기록에 가려져 가덕도 서쪽 천성항에 위치한 천성진성(天城鎭城, 시 지정기념물)이 부산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해상 교두보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수군은 주요 해안 거점에 `진(鎭)'을 설치하는 것으로 편제하였다. 당시 경상우수영에 포함되었던 가덕도에는 왜구 방어를 위해 먼저 가덕진이 생기고 이후 1544년에 천성진이 설치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덕도는 곧바로 함락되었지만, 조선 수군은 부산포 진입을 위한 해상 교두보인 가덕도를 탈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공방전을 펼쳤다. 마침내 조선 수군은 가덕도 천성진을 확보하고 3일간 정박하면서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부산포로 돌진, 적선 100여 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결국 부산포해전 승리의 디딤돌 역할을 한 것은 천성진이었던 것이다.
 개항과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가덕도는 다시 한번 일제에 의해 일본군 군사시설로 활용된다. 그 후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도 가덕도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한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여 개발이 정체되어 있었다. 한편 이러한 제한은 가덕도의 숱한 역사 유적과 생태군락지 등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계기를 가져왔다. 부산박물관에서는 특히 가덕도 천성진성에 주목하여 2016년부터 지금까지 6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천성진성은 조선시대 수군 병영을 설치하여 세운 성으로서 넓이는 47,927㎡이며 현재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특히 임란 전 초기 축성 과정에서부터 임란 후 성곽이 증축되어 가는 과정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적 가치가 아주 높다. 아울러 조선시대 방탄복이라 불리는 두정갑(옷 안쪽에 철판 미늘을 대고 쇠못으로 고정한 갑옷)이 대량으로 출토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천성진성 유적이 제대로 보존되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부산박물관 전시운영팀장

가덕도 천성항에 위치한 천성진성(점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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