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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변방 아닌 혁신의 첨병, 영원한 남구의 관문 `문현)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변방 아닌 혁신의 첨병, 영원한 남구의 관문 `문현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7/31/ 조   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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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門峴)은 옛날 집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뜻하는 지게의 한자어

응답하라,
남구의 1980!

퍌 문현로타리 일대의 상전벽해


 문현동은 남구의 서쪽 관문이다. 문현교차로는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당시 문현동의 상징과 같았던 단층 건물의 대성극장이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뒤로 하고 경영난으로 폐관한 것은 이즈음이다. 극장은 지금의 문현교차로 교통광장 쌈지공원에 있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배정고등학교 경사지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즐비해 있던 수백 채의 판잣집들이 철거되었다. 동천 끝단에 다리가 놓이면서 앞바다로 나가 조개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던 조갯배들도 사라졌다.
 한일오피스텔 앞까지 깔려 있던 우암선 철로가 걷히면서 구수한 주정 찌꺼기 냄새를 풍기던 대선주정공장도 문현교차로를 떠났다. 동천변 부산골프클럽 옆에서 서민들의 추위를 해결해 주던 연탄공장도 2017년 폐업했다. 번영로 교각 밑이 진입로가 되어버린 문현메가마트 초입에 `우리네약국' 건물이 있다. 이 약국 건물 옆에 한국발명진흥회 부산지회가 있었다. 지금은 다이소가 성업 중이다. 우리네약국 앞에서 육교를 건너면 당시에는 생소했던 다문화 대안교육기관인 아시아공동체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조마루 감자탕'이 성업 중이다. 문현대림시티프라자 앞에는 수년 전만 해도 옛 모습 그대로인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대성극장 사정으로 쇼를 못하면 이 기와집에서 임시무대를 꾸려서 공연하기도 했다.
 문현동이 급속하게 변모한 것은 경부고속도로 종점인 구서동 톨게이트까지 직행할 수 있는 부산도시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부터이지 싶다. 문현교차로에서 진입했던 이 도시고속도로의 다른 이름은 `번영로'다. 그래서인지 이때부터 문현동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했다. 남구의 서쪽 관문으로서 위상이 더욱 높아진 것은 동서고가로 개통도 한몫했다. 여기에 부산도시철도 2호선이 국제금융센터·부산은행역-문현역-지게골역 세 개의 역을 통과한다, 이로써 문현교차로는 동서를 잇는 핵심축이자 교통 요충지로 자리매김했다.
 문현동의 새로운 상징물로 문현대림시티프라자가 등장했고, 이듬해인 2000년부터 문현교차로 일대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문현금융단지 BIFC(부산국제금융센터)가 있다. 이러한 고층 건축물들은 문현교차로를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듯 느껴진다. 최근에는 문현교차로 지하보도가 커뮤니티와 갤러리 공간으로 새단장했다. 그러고 보면 문현동을 통털어 문현성당만이 유일하게 그 자리에 있다. 사실 문현동의 변화를 함께하는 문현교차로의 변화는 마치 뽕나무밭이 변해서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의 `상전벽해'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진시황의 사절인 서복이 2,200여 년 전 불로불사약을 구하러 장고개 고갯마루 일대의 강선대에서 2023년의 문현동을 미리 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곽태욱
향토사연구가·소설가·문현동 주민

문현동 초입을 가로지르는 문현고가 일대의 1985년 모습. 아래 작은 두 사진은 1980년 문현로터리를 만드느라 한창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전 남구청 공무원 김맹중씨 촬영.
2023년 문현고가 일대의 모습. 드론 촬영=강정흔 주무관(문화미디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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