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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옛날 지도로 보는 남구 〈3〉 분포염전)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옛날 지도로 보는 남구 〈3〉 분포염전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11/03/ 조   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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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 소금밭' 조선의 소금, 여기서 굽다


 분포는 용호동 엘지메트로시티 일대 초·중·고 학교명에 많이 쓰인다. 분포초등, 분포중, 분포고등학교다.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 그렇지 분포를 내세운 데는 훨씬 많을 것이다. 용호동 일대는 분포가 널리 분포된 셈이다.
 "잘 모르는데요." 그럼에도 분포는 여전히 생소하다. 왜 분포일까. 고개를 갸우뚱대기 일쑤다. 그나마 요즘은 나은 편이다. 일간지에 부산의 포구를 연재하면서 분포를 취재하던 2004년, 2005년 이때만 해도 열에 일고여덟은 몰랐다. 자녀가 거기 학교에 다니거나 다녔어도 그랬다.
 분포 초·중·고가 있는 데는 평지. 바다를 매립해 편평하다. 그래서 분포는 매립 이후 새로 생긴 지명으로 아는 사람이 적잖다. 반은 맞다. 오랫동안 부산의 역사에서 지워졌다가 바다를 매립하고 학교를 세우면서 숙의 끝에 분포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반은 새로 생겼고 반은 오랜 역사를 품은 지명이 분포다.
 분포는 지금도 공식 행정지명은 아니다. 부산의 현대사에서 까마득히 멀어졌던 만큼 공식 복원에 시간이 걸리는가 싶다. 그러나 이미 생활권에 들어와 있기에 공식, 비공식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지명에 담긴 속뜻이 친근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부산을 대표하는 지명의 하나가 되리라 믿는다.
 盆浦. 분포의 한자어다. 화분 할 때 그 `분(盆)'이다. 옥편에는 `동이' 분으로 나온다. 물동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저기 물동이 널렸던 포구가 분포다. 포구에 웬 물동이? 대부분은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댄다. 물동이는 실제로 많았다. 일제가 조선에서 득세하기 이전 용호동 개펄은 물동이 천지였다. 물동이는 소금 굽는 질그릇이었다. 여기에 바닷물을 한가득 담고서 펄펄 끓였다. 물은 증발하고 소금만 남았다. 조선 전래의 소금인 자염(煮鹽)이었다. 일제가 득세하면서 자염은 밀려나고 천일염이 대세가 되었다. 햇볕을 이용하는 천일염은 대만이 원산지였다. 일제가 대만을 차지하면서 천일염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조선도 천일염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염은 일상에서 지워졌다. 대동여지도 김정호가 조선 최고로 성했다던 명지 자염이 지워졌고 여기 분포 자염이 지워졌다. 복원 가능성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희망의 빛줄기는 아직도 시퍼렇다. 명지 출신이 밀양에서 자염을 내고 있으며 자염으로 맛을 내는 식당도 간간이 보인다. 박물관 자염 기획전 소식도 반갑다.
 "분포를 여기 토박이들은 분깨라고 합니다." 용호동과 맞닿은 용당동의 새마을금고 최방식 이사장은 여기 토박이. 이 일대의 어제와 오늘을 훤히 꿰찬다. 2017년에는 `용당동의 빛과 어둠'이라는 향토사 역저를 냈거니와 내가 분포를 취재할 때 동행하며 자문했다. 최 이사장에게 들은 `분깨'는 여기 자염만큼이나 맛깔스럽다.
 `포구는 개다.' 이따금 부산의 포구를 강연하거나 가이드로 나선다. 포구 해설에 재미를 주려고 끄집어내는 말이 이 말이다. 포구를 개로 빗대면 대개는 눈이 동그래진다. 포구가 개라니? 그러나 100% 맞는 말이다. 옥편에 그렇게 나온다. 포구 포(浦)는 `개' 포다. 그래서 분포가 분개가 되고 경상도 억센 발음으로 분깨가 되었다.
 `개'는 무슨 뜻일까? 옛 문헌에 나오는 고어처럼 들리는 이 말은 지금도 흔히 쓰인다.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용어다. 개펄, 갯가, 갯바위, 갯낚시 등등이 모두 `개'에서 나왔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던 옛사람은 포라는 어려운 한자 대신 `개'라는 쉬운 우리말을 썼다. 사상구 덕포는 덕개였으며 서면 전포동은 밭개였다.
 분포 옆에도 포구가 있었다. 한자는 석포(石浦)였고 우리말은 돌개였다. 조선시대 소금은 나라 재산이었기에 분포는 요지였다. 석포도 요지였다. 역시 나라 재산인 말을 키우는 국마장이 석포에 있었다. 분포도 중요했고 석포도 중요했기에 1871년 제작 〈영남읍지〉는 이 두 포구를 부산을 대표하는 포구인 양 우뚝 세웠다.
 분포. 옛날 지도, 옛 지명이지만 그러기에 정감은 더 간다. 부산 입장에선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한 형제 같고 자매 같다. 소금보따리 이고서, 소금가마니 지고서 이 길을 지나던 어머니가 거기 있고 아버지가 거기 있다. 소금은 무거웠어도 생때같은 자식 생각에 거뜬히 이 길을 지났을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아버지. 옛날 지도로 보는 분포는 짠내, 땀내 범벅이다.
동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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