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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핀 `연잎 우산에 깃든 시원한 행정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08/02/ 조   회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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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핀 `연잎 우산'에 깃든 시원한 행정
〈그늘막〉

오륙도 칼럼

전상수
부산여성신문 편집주간·전 남구청장


 오랜 친구 정자가 대연동에 살고 있다. 우리는 점심을 함께 하면서 늘 많은 대화를 나눈다. 용호동 쌍둥이네 보리밥집에서 만나려면 언제나 이기대 지구대 앞 건널목을 지나야 한다.
 이게 웬 일인가. 어느 날 갑자기 신호대가 있는 삼각 건널목 옆에 초록빛 큰 연잎 우산이 펼쳐져 있다. 한여름 `볕 가리개'인 그늘막이다.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여름비가 내리면 연잎을 줄기째 꺾어 머리에 덮고 가던 옛 시골 어린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도로 옆에 피어 오른 한줄기 연잎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답게 보인다.
 연잎 아래 둥그스름한 의자도 붙어 있다. 잠깐 비를 피할 수도 있는 실용성 조형물이랄까. 작은 것 같지만 이것이 섬세한 복지이며 아름다운 문화로 느껴진다. 세상은 시끄러워도 우리 저변에는 이렇게 꽃을 피우는 문화의 토양이 깃들어 있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누가 이 아이디어를 받아 들였을까. 부산의 도심 도로 옆 건물에 조형물이 가끔 있지만 한 번도 감동을 받은 적이 없다. 뉴욕 5번가 패션 거리에는 재봉틀에서 일하고 있는 봉제사의 청동 조형물이 있다. 화려한 패션의 뒤편에 땀과 정성으로 일하는 봉제사의 소중함을 떠 올린다. 시카고 시청 앞 광장의 높다란 피카소 `독수리'에는 웅비하는 시카고의 기상이 서려 있다. 그런데 우리 시청 정문 앞에 놓인 작은 한복 인형은 그게 뭔가. 유치의 극이다.
 젊었을 적엔 거리의 가로수만 눈에 띄었다. 먼 먼 세월을 지나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지금엔 가로수뿐 아니라 길가에 놓인 의자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며칠 전 못골시장에서부터 평화공원을 둘러서 용호동으로 오려고 부산박물관 옆길로 갔다. 오래 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돌 의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많이 걸으려면 잠깐 쉬어 주면 좋은데….
 지난 겨울이다. 친구와 용호동 하나로마트 옆 합천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걷는 것이 보약이라니까 점심 먹고는 거의 걷는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좀 쉬어가자고 했다. 조금 있으니 바닥이 따뜻해져 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의자에 전기 줄이 연결된 전기장판이다. 여름 버스정류소에는 머리 위로 에어송풍기가 설치돼 시원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버스 정류장에서 구들목과 송풍기를 만나다니 행정의 섬세함이 흐뭇했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어느 한의사의 책 제목이 걷는데 힘을 보탠다. 자주 걸어 다니면 눈에 띄는 것도 많다. 용호동 큰 거리에 대형 과일 가게가 부쩍 늘어 보기만 해도 느긋하다. 아주 오래전 뉴욕에 온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갖가지 과일을 보기 좋게 진열해둔 가게 앞을 지나다 과일가게가 아름답다고 격찬했다. 한국교민이 운영하는 가게라는 것이 알려져 더욱 흐뭇했던 기억도 난다.
 눈에 띄는 도로변 건물에서 건축주의 문화의식이나 인품을 읽을 수가 있다. 건축물은 바로 건축주의 수준이며 그 지역 문화의 수준이 이기도 하다. 빌딩은 개인 소유지만 이용자는 시민들이다. 신축건물은 이익도 중요하지만 공용이란 면에서 균형이 절실하다.
 가끔 지나가는 시민을 배려한 건물이 있다. 용호동 큰길가에 있는 `서민 정형외과' 건물이 그 하나다. 친구와 함께 햇볕 아래로 천천히 걸어오다 그 병원 입구 의자에는 잠간 쉰다. 큼직한 나무 의자는 건물 그늘이 드리워 정다운 쉼터가 된다. 다른 노인네도 앉았다 간다. 병원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고 싶다.
 대연동 고려병원 쪽 용호동으로 들어오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 건물에도 건물 바깥 아래쪽에 안쪽으로 푹 들어가게 뚫어 널찍한 나무의자 두 개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건축주의 넉넉한 인품이 도시의 야박함을 상쇄하는 고마운 보시인가 싶다.
 건널목에 핀 연잎 우산의 신선한 행정, 겨울이면 따뜻한 구들목 정류장 의자, 건물주가 만든 잠깐 쉼터의 배려가 더 큰 행복행정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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