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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08/31/ 조   회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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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김 정 화
수필가

어서 와, 부산은 처음이지?

 어서 와, 부산은 처음이지? 열차 종점인 부산역에 내리면 맞은편 빌딩들 사이로 산동네 풍경이 먼저 반겨 줄 거야.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짐을 부린 곳, 실향의 아픔을 간직한 궁핍한 달동네, 판잣집과 하꼬방이 넘쳐나 을씨년스러웠던 애환의 장소였지. 이러한 구도심이 근대 역사를 담은 이바구길로 조성되었어. 이바구가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라는 것은 쉽게 눈치챘을 거야. 이곳에 서면 "콱 마 궁디를 주 차뿌까?" 같은 싱싱한 부산말들이 날것으로 퍼덕이게 되지. 드디어 이방인임을 실감하게 될 거야.
 어쨌든 초량 중국인 거리 쪽으로 건너와야 해. 한쪽은 차이나타운이고 반대편은 러시아 거리야. 길 하나를 두고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뒤섞이는 재미있는 곳이지. 옛 백제병원을 만나고 최초의 명태 고방이었던 남선창고 터를 훑어보고 나면 산복도로 비탈 마을이 보여. 산복도로란 산중턱을 굽이굽이 도는 도로야.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이어서 까꼬막길이라고도 해. 그 길을 끝까지 오르면 산만디가 나오지. 만디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산마루인데 만대이, 만디이라고도 해. 고개 만디를 넘어 학교에 다니고 뒷산 만디까지 소꼴을 베고 나물 캐던 시절도 있었지. 우리가 약속한 술집 `모티'도 산복도로 끝자락에 있어.
 경상도 사투리는 간결하고 깔끔한 것이 많아. 이곳 사람들의 강직하고 급한 성정을 닮아서 축약의 진수를 보여주지. 모음 `이'로 끝나는 단어만 살피더라도 궁둥이는 궁디, 주둥이는 주디, 간덩이는 간띠, 뚱보는 뚱띠, 문둥이는 문디, 쌍둥이는 쌍디라고 해. 또 알맹이는 알키, 쭉정이는 쭉디, 단단히는 단디, 우리의 약속 장소인 모티도 모퉁이라는 뜻이지.
 까꼬막길 풍경도 사투리만큼 재미있잖아. 새미라고 불리는 우물 자리를 거쳐 배릿한 육수 향이 풍기는 국시집을 지나면 누룩 냄새 쿰쿰한 막걸릿집이 나오지. 오늘처럼 꾸무리한 날씨에는 걸쭉한 막걸리가 딱이야. 신선한 담치와 매운 땡초를 박은 정구지찌짐 한 접시가 놓이면 육자배기 가락이 절로 울리지. 부산에 오면 길도 질이 되고 슈퍼도 점빵이 되며 아줌마도 아지매가 되는 거야. 그러니 이곳 비탈길에도 천지빼가리라는 이름을 단 마을 카페가 생겨났겠지. 천지빼까리는 천지에 볏가리가 많다는 뜻으로 매우 많다는 걸 의미해. 쌨다, 쌔삐맀다, 쌔빌맀따, 억수로, 한거석, 한빨띠, 대끼리, 대빠이, 허들시리, 몽창시리도 같은 뜻이야.
 한 가지 물상이 몇 갈래 말로 나누어지는 것도 부산 사투리의 맛이 아닐까. 담벼락을 담뿌랑, 담뿌락, 담베락, 담뻬락으로 말하고, 멸치는 메르치, 메엘치, 메루치라 부르며, 꼴찌라는 말도 꽁바리, 꽁또바리라고 하지. 골목길 노인들이 맨날 지각하는 아이에게 "니는 오늘도 꽁또바리네." 하고 훈수를 두는 것처럼. 표준어로 할 수 없는 것을 사투리가 기어코 해낼 때도 있지.
 점점 경상도 말에 빠져들지 않니?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적절히 섞인 사투리를 듣고 있으면 오 솔레미오나 산타루치아의 이태리 발음에 한글 토를 달아 부르던 기억을 떠올리게 될지도 몰라. 비앙꼬, 까리노, 리베르따, 아망떼, 그라지에, 띠아모 같은 이태리어와 우야꼬, 와그라노, 아물따나, 욕봤떼이, 언지예, 하모 같은 경상도 말이 닮은 것도 같지. 경상도 사투리는 독어처럼 엄숙하거나 불어의 우아한 콧소리도 없고 일어처럼 나긋나긋하거나 서울말처럼 간드러지지 않지만 말의 압축을 풀어내면 마치 신들의 이야기처럼 기발한 해석이 숨어 있으니 참으로 매력적인 언어라고 생각해.
 말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끈이잖아. 그러한 말이 다양한 것은 당연지사. 지방마다 독특하게 쓰던 탯말을 죽이고 천편일률적인 서울말을 강요해서도 안 되겠지.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천만의 말씀.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점점 사투리가 줄어들고 있어. 산복도로를 돌던 만디버스가 경영난 부진으로 중단되듯이 한때 당당했던 신라어도 이곳 술집 모티처럼 모퉁이로 밀려날까 걱정이지. 사투리가 멸종되어 死투리가 되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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