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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3/31/ 조   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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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피아노 이야기

송순임
시인·남구문인협회장

 내가 부산과의 인연은 초등학교를 전학 오면서 부터다. 아버지는 동국제강 용광로 창설시 팀의 일원으로 부산에 오면서 우리가족의 낯선 타향살이가 시작되었다. 내가 엄마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첫발을 디딘 곳은 동국제강이 있던 지금의 메트로시티 아파트단지다. 지금은 부산 최대의 주거지역이 되었지만 당시 동국제강은 철강을 직접 생산하는 용광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먼저 부산에 내려와 있던 아버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지만 우린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두려웠다. 회사 정문 앞은 버스가 다니는 길이지만 그때는 신작로가 아니었다.
 간혹 버스가 지나간 뒤 뽀얀 흙먼지 사이로 몇 명의 아이들이 지나갈 때면 난 참 이상한 곳에 왔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 여기가 미국이야?" 부산 와서 내가 한 첫말이었다.
 다음날부터 대연초등학교 학생이 되었고. 난 빨간 장미가 새겨진 가죽가방을 메고 학교가는 것을 참 좋아했지만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아이들은 `서울내기' `다마네기' `맛좋은 고래고기'라며 나를 놀려댔지만 부산사투리는 경상도 방언과 섞여 강한 억양과 짧은 어투, 센소리 등으로 그 당시 아이들의 말씨도 비슷했다. 미디어의 발전으로 이젠 전국 지방사투리를 다 알아들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친구와의 소통이 부족했던 나의 유일한 취미는 음악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골목이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너는 가수가 될거야"라고 했고 그렇게 난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다. 난 음악시간이 제일 좋았다. 오르간반주가 유일했지만 선생님은 항상 나를 앞으로 불러서 선창하게 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 큰 불이 났다. 어른들이 학적부가 다 타버렸다고 걱정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작년에 `대연초등학교 100년사' 발간에 학교역사 관련 자료가 많이 소실되어 큰 애를 먹었다. 불이 났던 그 해에 TV방송국에서 주최하는 학교자랑대회 같은 프로그램이 열렸다. 음악선생님은 따로 나를 불러서 노래연습을 시켰다. 나는 그 피아노반주에 맞춰서 노래연습을 하였고 학교대표로 뽑혔다. 4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린 `나뭇잎 배'를 지정곡으로 TV출연을 하였고 그 노래는 나의 인생곡이 되었다. 내가 시인이 된 후 나뭇잎 배를 작사하신 박홍근 선생님과 나의 문학스승이신 박화목 선생님과 꿈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때 피아노 앞부분에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 글자가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horugel piano(호루겔피아노)'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대통령께서 불이 난 우리학교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고 주셨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난 한번도 그 피아노를 잊은 적이 없다. `난 성악가가 될거야' 늘 피아노 앞에서 다짐하던 내 꿈의 분신이었다. 난 어른이 되도록 그 피아노를 그리워했다. 그 피아노를 보면 내 꿈이 살아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마음 한켠 자리했던 그 피아노를 보기위해 2006년 어느 날 학교를 찾아갔고 이미 그 피아노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서진규 교장선생님은 멋쩍게 위로해주었다. 아무도 그 피아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사라진 나의 꿈에 대한 서러움이었으리라.
 그럴 리 없다는 나의 포기하지 않은 희망은 결국 학교 창고의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 십년 만에 발견되었고, 한글자도 틀림이 없이 기억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 각하 하사품' 피아노는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누구에겐 꿈이 되고 현실이 된다. 버려진 돌 하나가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나와 그 피아노의 만남은 꿈을 향한 나의 버팀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성악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피아노에서 시작된 그 꿈은 내 삶의 작은 조각들 속에서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이후 그 피아노는 한 번 더 폐기처분의 위기를 벗어나 많은 상처를 입은 뒤 내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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