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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정의 휘게 라이프)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이은정의 휘게 라이프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2/01/ 조   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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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말 한마디가 여행의 품격을 바꿔놓기도 한다.
 지난 2008년 7월, 드디어 루마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 대합실에서 회색빛을 연상시키는 동유럽의 묵직하고 낯선 두려움에 몇번이고 발길을 돌리려다 용기를 냈다. 숨 가쁜 역사 속의 낯설던 루마니아. 당시 한국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조그만 민박을 운영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로 보름간 4개국을 거치는 `소심한 여자'의 나홀로여행은 시작됐다.
 서양 역사의 화려한 원형을 간직한 이스탄불과 아담한 고원도시 소피아, 회색도시 부다페스트, 운치있는 프라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경험은 지금도 눈감으면 되살아나는 인생 선물이 되었다. 길을 떠나기 전 여행자는 여행의 목적과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들 한다. 돌이켜보면 이 아름다운 순간을 이미지로 남기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쉼 없이 출렁이는 파노라마를 두 눈에 모두 담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다. 낯선 희열감에 매순간 요동치는 가슴을 누르며 달래기도 벅찬데 어찌 느긋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를 시간이 있었으랴. 여행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은 사치일지 모르겠다. 여행은 `비움과 벗음'의 자유를 가르쳐주는 역동 그 자체이다.
 루마니아의 첫인상은 다듬어지지 않은 천연 원석 같았다, 당시 루마니아의 택시는 바깥에 등급별로 기본요금이 적혀 있었다. 주머니 사정으로 가장 저렴한 택시를 잡았다. 차량은 낡았고 내부는 허름했다. 더욱이 조수석 택시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양손으로 차문을 꽉 붙잡아야 했다. 택시비를 아끼려한 선택을 후회하며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어느새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가방을 내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즐거운 여행을 기대한다"는 덕담과 함께 택시 기사로부터 90도 깍듯한 절까지 받았다. `고맙다'는 나의 의례적 답변에 그가 남긴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my pleasure!"
 뜻밖의 `환송'에 차 문을 잡느라 힘을 줘 저렸던 팔의 통증마저 잊었다. 문짝도 닫히지 않는 낡은 택시와 달리 승객에게 최고의 귀빈 예우를 하는 그의 모습이 동유럽의 여름 햇빛 아래 눈부셨다. 여행의 품격을 올리는 데는 비행기나 호텔의 등급이 아닐 수 있음을 느꼈다.
 바벰바 부족은 남아프리카에서 범죄 발생률이 가장 낮은 부족으로 유명하다.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의 단골 연구대상일 정도로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누군가 죄를 지으면 그를 광장 앞에 세우고 그를 아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증언하는 방식으로 벌을 준다. 사람들은 그가 과거 착했던 행동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증언하고 물러난다. 감사의 말만으로 죄인의 착한 본성을 일깨우고 회개와 참회를 끌어내는 것이다. 감사의 강력한 힘이다.
 내일을 위한 추억을 만드는 데 오늘을 사용하라고 한다. 나의 오늘은 내가 만드는 한편의 영화이자 한번 뿐인 삶이다. 그래서 오늘의 시작은 언제나 가슴 설렌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억눌렸던 여행 본능이 꿈틀댄다. 이왕이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여행을 권한다.
동의대 교수(철학인문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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