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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구 르포르타주)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남구 르포르타주
작 성 자 문화미디어과 등록일 2023/02/28/ 조   회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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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손길이 너무 좋은, 나는 구원 받은 길냥이"

※ 남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스토리를 다큐 형식으로 전달하는 `남구 르포르타주'를 연재합니다. 심층 취재와 분석을 통해 주민 여러분들에게 감동과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야옹∼, 내 이름은 가은이, 열두살 암컷 고양이다. 길고양이 쉼터가 내 집이다. 여기에 온지는 10년쯤 됐다. 방 2개에 마당이 딸린 주택에서 나 같이 오갈 데 없는 길냥이 40마리가 모여 살고 있다. 이 중에는 22살 된 노묘도 둘이나 있다. 사람 나이로 치면 100세가 훨씬 넘는다. 다들 중성화수술을 한데다 길들여져 길고양이의 야성은 모두 사라졌다. 부끄럽지만 모두 쥐를 가장 무서워한다.
 길냥이의 삶이 대체로 그렀듯 쉼터에 오기 전까지 떠올리기 싫은 끔찍하고 아픈 사연 하나씩은 품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10년 전, 어느 총각 오빠가 나를 분양받았다. 그 곳에는 나 말고도 여러 길냥이들이 있었는데 주인은 우리한테 가혹하고 난폭했다. 이럴 거면 우리를 왜 분양받았는지 이해되질 않았다. 나는 주로 주먹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는데 지옥 같은 날들이 반복됐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지금의 엄마가 나타났고 나는 구조됐다.
 엄마는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고층 아파트로 나를 데려갔다. 하지만 나는 그때 사람들에게 마음을 문을 완전히 닫고 있어 누가 머리를 쓰다듬으려만 해도 끔찍했던 악몽이 떠올라 하악질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엄마는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베란다 바닥에 전기장판을 깔고 내가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유리를 신문으로 가렸다. 가족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 좁은 베란다에서 나와 한겨울을 보냈다. 처음에는 엄마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차츰 엄마의 진심이 어렴풋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잠든 엄마의 품에 살며시 파고들었을 때 엄마가 놀라면서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나도 놀랬다. 사람에게 다가간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 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근래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게 이때의 고생 때문인 것 같아 늘 죄송스럽다.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면서 여기 쉼터로 옮겨왔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자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끔 낯선 사람들한테도 배를 보이면서 애교를 부리면 `개냥이'라고 놀린다. 학대 받던 길냥이의 변신에 다들 의아해한다. 솔직히 같은 고양이보다 사람의 손길이 더 좋고 그립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을 가져 그렇다"며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몇해 전 구내염을 심하게 앓아 동물병원에서 이빨을 모두 발치했다. 구내염은 영양분이 결핍된 길냥이들이 겪는 가장 흔한 질병이다. 단골병원에서 할인 받아 180만원에 수술을 했다. 그 덕에 이빨 빠진 고양이가 됐다. 지금도 1년에 서너번 염증주사를 맞고 있다.
 다른 길냥이들은 방 안에서만 지내는데 나는 햇살 좋은 낮에는 마당에서 뒹글뒹글하며 지낸다. 마당에는 나 외에 길냥이 다섯 마리가 더 있다. 얘네들은 방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방 안 친구들은 엄마가 구조해서 들어왔지만 마당의 친구들은 오다가다 쉼터에 흘러들어왔다. 그 중에 암컷 에미는 중성화수술 이전에 새끼들을 낳았는데 족제비한테 모두 잡아먹혔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엄마는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한 마리라도 살릴 수 있었는데…"라며 지금도 가슴 아파한다.
 쉼터에서 우리 사료 챙기고 배설물을 치우고 방청소하는 것이 엄마의 하루 일과의 전부가 됐다.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난방을 해줘 계절 바뀌는 걸 모르며 살고 있다. 우리 사료 구하느라 가족과 지인들에게 손 내미는 엄마의 모습이 애처롭다. 언젠가 엄마가 휴대전화에 저장된 먼저 세상을 떠난 길냥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적 있다. 적잖은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한낱 사라져야 할 기생충 정도로 여기고 그렇게 대우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을 죽어서도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가슴이 먹먹해 온다.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 온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whoever saves one life, saves the world entire)'라고 유대인 경전 탈무드에 적혀 있다고 한다. 나를 포함해 이곳 길고양이들은 우리 엄마로 인해 구원 받았다. 그 고마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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