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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9/14/ 조   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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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커트니
캐나다 참전용사·명예부산시민

11월 11일, 우리를 대신해 영웅들에게 경의를


 오는 11월 19일은 제2차 후크고지전투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패트리샤 공주 캐나다 경보병연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의 경보병 67명으로 구성된 우리 중대는 영국 블랙워치 1대대에 배속돼 `P중대'로 임명되었다. 후크고지에서의 반격과 방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했다. 우리는 기관총과 저격수, 박격포,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 속에서 시체 위를 걸었다. 언덕과 경사면 곳곳에는 영국군과 캐나다군, 한국군, 중국군 병사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우리 중대는 잠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늘 극도의 긴장 속에서 3일 밤과 3일 낮 동안 후크고지를 사수했다. 3명으로 구성된 야간순찰대를 보낸 적이 있는데 순찰대가 적과 마주치자 적들이 포탄을 퍼부었다. 우리가 적을 향해 총을 발포하면, 어둠 속 광야에 대고 양쪽은 서로 총질을 해대기도 했다.
 이런 전투의 기억은 수십 년 간 내 머릿속에 머물렀다. 지금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날의 악몽은 남아 있다. 내가 캐나다로 돌아왔을 때 몇 년간 툭하면 눈물을 흘렸고 울음이 나오면 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쓰러진 전우들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전우들과 함께 산비탈에서 얼어 죽은 모습을 상상했고 그러면 어김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캐나다 군대에서 3년을 복무한 뒤 19세에 제대했다. 19세 나이는 캐나다에서 맥주홀이나 술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였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는 교과서를 읽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단어들이 페이지에서 튕겨 나왔고 한 페이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정신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읽고 또 읽어야 했었고 계속 집중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7∼8쪽을 읽는데 두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한국전쟁과 후크고지 전투는 지금 현재도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올해 88세이고 지팡이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다. 이마저도 짧은 거리만 걸을 수 있다. 걷는 게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걸음을 옮긴다. 우리가 한국에서 겪었던 고통과 고난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도 "한국으로 돌아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우들과 만나세요"라는 국가보훈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초청 받게 된다면 기꺼이 한국으로 갈 것이다. 유엔기념공원이 먼저 떠난 전우들에게 잘 보존된 안식처로 계속 유지되는 것은 나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 총에 맞은 적들은 언덕에 묻어주고는 정작 여러 진지에 널린 우리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공포감과 죄책감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어떤 때에는 수습할 시신이 남아있지 않거나 시신이 흙에 뒤섞여 붙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한 전우들을 품고 있는 부산이라는 대도시가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주고 있다. 바라건대 부산이 2030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기를 희망한다. 오늘날 부산은 70여년 전 우리 군함이 도착했을 때의 항구도시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초라한 환경과 궁핍한 사람들, 녹슬고 엉망인 항구 등 당시는 모든 것이 우울한 광경이었다. 2년 전 나를 명예시민으로 받아 준 부산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다시 부산을 방문하게 된다면, 지난 20년간 매년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부대원 12명이 잠든 묘소를 참배할 것이다
 만일 내가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면, 11월 11일 아침 11시 사이렌이 울리면 나를 대신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희생에 감사해주었으면 한다.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378명의 캐나다 전몰용사 중 한명은 한국전쟁에서 처음 전사한 캐나다 군인이다. 그가 숨질 때 고작 17살이었다. 그는 나이를 속이고 사촌의 이름으로 참전했다. 그의 묘역에 있는 동판에는 두 개의 이름이 양각되어 있다. 그는 우리 부대의 자랑스러운 전우였다.
 11월 11일 오전 11시는 캐나다 시간으로는 10일 밤9시가 된다. 이때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모여 전사자를 추모하는 기념식을 가진다. 그들은 올해도 `부산을 향해(Turn Toward Busan)' 한국인들이 기리고 잘 돌봐주는 우리 전우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후크고지 전투:임진강 북단에 있는 해발 200m의 능선고지를 두고 미군과 영연방군이 중공군과 벌인 대규모 전투를 말한다. 지형이 `갈고리'를 닮아 영어로 `후크(hook)' 고지로 명명됐다. 1952년 10월부터 1953년 7월 휴전 직전까지 총 4차례의 전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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