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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산대첩과 부산시민의 날)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부산대첩과 부산시민의 날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9/14/ 조   회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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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의
동화 이야기


 영화 `한산'이 인기다. 1,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명량'의 후속작으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주목받았던 영화다. 전작 `명량'의 이순신이 수많은 외압 속에서도 담대하게 나아가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었다면, `한산'의 이순신은 내면의 강인함으로 냉철하게 판단해 승리로 이끄는 지략가다. 한 명의 감독이 조명한 인물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이순신이라는 캐릭터가 그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 이순신 연구자만 5,000명이라는 말이 있다. 이순신의 매력에 빠져 이순신의 행적을 좇고 흔적을 찾아 연구하는 분들의 숫자다. 부산대첩기념사업회 명예이사장인 김종대 전 재판관이 대표적이다. 올해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했습니다'를 출간한 김 전 재판관은 평생 이순신 연구에 매진해 그의 정신을 정리하고 시민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꿈에 이순신을 만날 정도로 이순신과 깊이 교감하고 있다고 한다.
 1592년 임진년, 왜군은 부산진성을 시작으로 다대포성, 동래성을 차례로 깨부수고 20일 만에 한양을 접수했다. 바람 앞에 등불 신세였던 조선은 금방이라도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전라도 곡창지대를 점령하지 못한 왜군은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적을 만났다. 바로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임진년 음력 5월 4일에 1차 출정으로 옥포 합포 적진포를, 2차 출정으로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를, 3차 출정에서 한산도와 안골포를, 그리고 4차 출정으로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를 깨고, 드디어 부산포에 도착했다. 왜군의 본거지였던 부산 앞바다를 공격한 부산포해전.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에서 왜군의 전함 120여 대를 침몰시켰다. 조선 수군의 피해가 7명 사망, 25명 부상이었던 데 반해 왜군은 4000여명 사망, 1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실로 엄청난 승리였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 싸움보다 더 큰 것이 없었다'라고 밝힐 정도였다.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은 큰 승리라는 점에서 `부산대첩'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매년 10월 5일은 `부산 시민의 날'이다. 1980년 제정 당시 여론을 수렴한 결과, 부산대첩이 있었던 음력 9월 15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5일로 결정되었다. 부산 시민들이 정한 날인데, 역설적이게도 거의 대부분의 부산시민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부산 시민들이 부산대첩을 통해 자긍심을 가지고, 이순신 장군의 의롭고도 인간적인 면모들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을 동화 `오만데 삼총사의 대모험2'에 담았다. 1편에서 남구의 여러 지역으로 시공간 모험을 떠났던 오만데 삼총사가 2편에서는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던 정발 장군, 윤흥신 장군, 송상현 부사를 만난 뒤, 부산대첩까지 경험하는 이야기다. 부디 독자들에게 임진년 영웅들의 의(義)가 가 닿기를 바란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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