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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에세이
작 성 자 관리자 등록일 2016/04/15/ 조   회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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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여운

 창밖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하고 앉았다. 햇살이 따숩다. 입에 달콤한 초콜릿이 녹아드는 듯 몸이 녹작지근하다. 하늘에 불땀 뭉긋한 화로 하나가 장치된 것일까. 등을 돌려 앉았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기지개를 켜는 새싹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창이란 창은 죄다 열어젖히고 한결 따뜻해진 바람을 맞이한다. 겨울엔 청소를 끝내기가 무섭게 창을 닫아 바람을 막았는데 이제 청소를 끝내고도 여유 있게 머리칼을 날리는 봄바람을 음미한다. 
 이맘때 쯤 목덜미를 간질이던 봄바람에 덜미가 잡혀 나는 내리 3년째 같은 장소로 은밀한 외출을 감행한다. 1년만의 외출은 자못 나를 가벼운 흥분으로 들뜨게 한다. 이곳은 나와 남편만이 아는 쑥과 냉이의 노다지(?)를 품고 있는 한적한 실개천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벚나무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아슬아슬하고도 감질나는 그 한때를 만끽하며 쑥을 캔다. 겨우내 단조로운 메뉴로 빈약했던 식탁이 오늘은 봄의 풋것들로 성찬이 될 것을 생각하며 냉이를 캔다. 쪼그리고 앉아도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노다지를 캔다. 씨를 뿌리지 않고도 풍성한 수확을 내어주는 이곳은 노다지의 땅임에 틀림없다. 
 풍성한 노획물 보따리를 옆에 두고 점심 보따리를 푼다. 대충 챙긴 점심이지만 맛으로야 수랏상이 부러우랴. 따뜻한 햇살, 부드러운 바람, 맑은 개울가, 바야흐로 벙글기 시작한 벚꽃, 앙증맞은 노란 민들레까지 데커레이션으로 어우러진 노천 밥상, 그 앞에 앉은 봄날의 오후는 짧기만 하다. 꽃들의 잔치, 연록의 어린 싹들이 연출하는 봄 풍경을 맘껏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한 시간은 붙잡고 싶고 붙잡고 싶은 시간은 언제나 짧다. 그래서 긴 여운을 남긴다. 
 봄은 글자 생김만 보아도 대지를 뚫고 솟아난 새싹을 닮았으며 또한 꽃망울의 모양새와도 흡사하다. 비읍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꽃이 활짝 열릴 것만 같고 비읍에 붓만 닿아도 연록색이 묻어나와 산천을 채색할 것만 같다. 봄꽃은 여린 만큼 비바람에 쉬 져버리는 아쉬움을 안고 있다. 꽃을 시샘하는 건 추위만이 아닌 듯하다. 비바람에 날리고 꺾이는 꽃들이 안타깝다. 
 화개작야우(花開昨夜雨)요, 화락금조풍(花落今朝風)이라.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중학교 때 배웠던 한시 한 구절이 생각나는 봄이기도 하다. 열흘 붉은 꽃이 없는 것처럼 꽃 같은 시절, 봄 같이 풋풋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4월이 잔인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이두래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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