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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6/03/ 조   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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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옥
명예기자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야외 결혼식


 "딸이 결혼을 안하겠다는 말은 절대 믿으면 안됩니다."
 축사 하는 자리에서 남편이 첫 번째 입을 열자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4월 중순, 딸아이의 야외 결혼식은 마지막 벚꽃잎이 날리는 경주 한옥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진행되었다. 어릴 적부터 동네잔치 같은 분위기에 하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다고 딸은 말해왔다. 날씨와 코로나 상황이 불투명한데다 서울 사돈댁과 부산 모두 가깝지 않은 교통 형편이라 남편과 나는 태산 같은 걱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2박3일 진행된 딸아이의 결혼식은 한편의 영화 같이 지나 갔다.
 결혼식 전날 오후, 친척들과 삼릉 소나무 숲에서 작은 예배를 드렸다. 그때 사위의 이모부와 작은 아버지, 딸의 고모부가 함께 예배를 리더했다. 그 후 만찬장에서 양가 친척들의 상견례도 함께 이루어졌다. 손녀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할머니가 봄바람 쐬며 들판에서 캔 쑥떡상자를 안고 오셨는데 가장 인기였다. 사위 친구들이 식당에서 함놀이를 벌였다. 짓궂은 함놀이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새 가족으로 만난 기쁨을 남편은 사돈식구들에게 연거푸 와인잔으로 표현했다.
 결혼 당일, 야외 결혼식이라 장소가 넓고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전 해제를 앞둔 무렵이라 하객들도 많았다. 남사당패의 탈춤과 버나돌리기로 본식을 알리고, 사물놀이는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즐기는 결혼식을 위해 팔순 넘은 사돈댁 이모와 나비 넥타이를 한 이모부가 맨 처음 행진했다. 인생의 선배로서 가족 중 최고 연장자가 먼저 등장하는 외국 결혼풍습에서 착안했다. 하객들은 놀라워했고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뒤이어 신랑과 신부 측 어린 조카들이 꽃바구니를 들고 꽃을 뿌리며 등장했다.
 결혼 당일은 1부, 2부로 나누어졌다. 1부에서는 환갑을 앞둔 딸의 고모부가 넬라판타지아를 하객들 앞에서 불렀다. 나이가 차도록 시집 안가는 조카에게 "결혼을 하면 이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수년전 지나는 말로 흘린 약속을 지킨 것이다. 무대 경험이 없어 하객들 시선을 의식해 선글라스까지 쓰고 떨리는 목소리는 하객들에게 오히려 뭉클함을 선사했다. 화답으로 딸은 첼로를 연주했다. 사위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 한 찬송가 `어미에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였다.
 사위인 여동생이 읽은 결혼식 축사는 모두에게 눈물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무렵에서야 나는 딸의 고모부가 축가로 떨던 목소리에 함께 나의 떨리던 다리가 진정되었다.
 서구에서는 신랑, 신부가 해로하겠다는 다짐으로 하객 앞에서 퍼스트 댄스를 춘다. 2부에서 퍼스트 댄스곡에 맞춰 신랑과 신부가 스탭을 밟았는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신랑 대신 바통을 이어 받은 아빠와 왈츠를 추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잔잔한 음악 도중 갑자기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신나게 흘러나오자 남편은 객석 사부인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왔고 하객들도 하나둘 덩실춤을 추며 삽시간 잔치판이 벌어졌다. 다같이 어깨 잡고 강강술래가 시작됐다. 때마침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라 신라의 달밤이 되었다.
 딸의 결혼 잔치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만큼 신나고 즐거운 결혼식은 처음이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멋진 결혼식" "이렇게도 결혼식을 할 수 있구나"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등 많은 축하 전화와 참가 후기를 받았다.
 어쩌면 `유별난' 결혼식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산품 같은 결혼식이 아닌 자신만의 결혼식을 갖고 싶어 한 딸의 바람대로 그 모든 비용과 수고는 보상을 받고도 충분했다. 하객들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 딸아이의 카카오톡 구절이 떠오른다. `나의 결혼식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나침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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