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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발한발 지르밟는 우리 땅 우리 바다, 걷기를 넘어 깨달음의 여정)정보를 제공하는 표 - 글번호, 발행년도, 월, 호수, 제목로 구성된 표입니다.
한발한발 지르밟는 우리 땅 우리 바다, 걷기를 넘어 깨달음의 여정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6/03/ 조   회 215
첨부파일
해파랑길
코리아 둘레길 출발지
걷기 聖地 남구
오륙도 → 임랑해변
(부산 구간)

일상서 특별함 찾는 `걷기의 마법'
자연·문명 공존 부산 바닷길 매력
탐방로 헷갈려 `개구멍' 통과도
오체투지 구도하는 심정으로 답사
18시간 60㎞ 걸어 멈춘 부산 끝자락


 도보여행의 궁극적 목적지는 순수한 자신과의 대면일지 모른다.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운이 좋다면 통찰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장거리 도보여행이 `순례'로 불리는 이유다.
 해파랑길 공식 출발점인 오륙도스카이워크 광장에 섰다. 장도에 앞서 장엄함 해돋이를 보고 싶었는데, 봄철 해무로 일출시간에서 20분 쯤 지나서야 붉은 햇덩이가 떠올랐다. 이기대 탐방로를 오르락내리락 하자 이내 굵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기대는 태고의 풍광과 신비를 품은 어느 절해고도를 연상시킨다. 해파랑길 750㎞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는 찬사가 허투루 나온 것은 아니다. 어울마당 부근에서 누군가 버린 커피 종이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래도 4.5㎞ 이기대 구간에서 발견된 유일한 쓰레기였다.
 바닷가 계단을 내려오다 아기 고양이 네 마리가 장난치며 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몸집으로 보아 태어난 지 두어달은 넘은 듯 하다. 귀여움이 천사를 닮았다.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어미는 먼발치서 새끼들을 번갈아보며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사막 같은 이곳에서 제 혼자 새끼들을 건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문득, 진짜 천사는 천진난만한 새끼들이 아니라, 저 야윈 어미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에게 그늘을 주고자 제 모든 걸 포기하는 이 땅의 모든 어미들이야말로 천사이자 부처이지 싶다. 평범에서 특별함을 보게 하는 힘, 걷기의 마법이다.
 이기대를 빠져 나오자 눈앞에 `문명'이 펼쳐졌다. 도중에 지인 한 명을 만났는데 나의 복장을 보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입니까. 산으로 가는 길입니까?"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커피에 샌드위치를 곁들여 격조 있게 아침을 먹고 싶었는데 발길은 나도 모르게 국밥집으로 향했다.
 해운대 동백섬을 에둘러 국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해운대해수욕장을 관통했다. 마천루 호텔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하와이 어디를 걷고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그래, 여기는 와이키키 해변이야, 부산이 아니야∼."
 작은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한 미포항 너머로 바벨탑 같은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 난해한 공존을 이룬다. 아마도 전 세계 바닷길 가운데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기묘묘한 풍경이지 싶다.
 옛 동해남부선 철길을 활용한 해운대 해변열차가 오가는 모습이 한가롭다. 여기서부터 해파랑길 1코스(16.㎞)가 끝나고 2코스(14.6㎞)가 시작된다. 철로 옆으로 단장된 산책로는 앞서 지나왔던 길에 비하면 융단길이다. 곧고 평탄한데다 탁 트인 바다 경관과 청량한 파도 소리는 지친 발을 어루만져주는 천상의 길이다. 물질하는 해녀를 처음 봤는지 고등학생들이 "저거 해녀 아니야?"라며 신기한 듯 사진을 찍어댔다. 옛 증기기관차를 닮은 꼬마열차와 함께 걷는 해변 탐방로는 4.8㎞, 그 사이 청사포, 구덕포 등 고즈넉한 포구 마을을 지나쳤다. 이기적일지 몰라도 이곳만큼은 자본의 탐욕이 스며들지 않기를 바랐는데, 사실상 `카페 마을'로 바뀌었다.
 송정해변을 지나 기장군 공수마을로 접어들었다. 오시리아관광단지(옛 동부산관광단지)에 포함된 이 어촌마을도 개발 바람은 피할 수 없나 보다. 작은 포구 뒤로 고급 아파트단지와 호텔·리조트, 아쿠아리움 건설 공사로 흙먼지가 섞여 날아왔다. 관광단지 조성 공사 때문인지 용궁사까지 해파랑길(갈맷길) 코스가 일부 변경돼 혼선이 생겼다. 도로로 우회해야 했는데 길이 헷갈려 페쇄된 옛 바닷길로 방향을 잡았다. 호젓한 숲길과 탁 트인 바다풍광은 일품인데 막상 용궁사 후문에 다다르니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낭패다. 30분을 걸었으니 돌아갔다 오려면 한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다행히 철문 밑으로 `낮은 포복'으로 통과할 만큼의 `개구멍'이 보였다. 체면은 구겼지만 시간은 벌었다. 관할 지자체 사정으로 해파랑길 탐방로가 변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용궁사를 거쳐 단일 휴양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라는 아난티 코브 리조트가 웅장하게 다가온다. 리조트 주변으로 조성된 2.1㎞ 오시리아 해안산책로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해안산책로의 백미로 꼽고 싶다. 이 산책로는 리조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각종 야생화와 바다 풍광을 거스르지 않는 조경은 인공이 자연을 얼마나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산책로는 2019년 대한민국 조경대상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해파랑길 3코스(20.2㎞)가 시작되는 대변항. 항구의 규모와 활력은 동해안 대표 어업전진기지라는 명성이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다. 근데, 여기서 또 다시 갈림길에 섰다. 다음 목적지인 기장군청으로 가려면 새 탐방로로 지정된 봉대산(229m)을 넘어야 하는데 이미 장시간 보행으로 산행은 큰 부담이 됐다. 고심 끝에 인도가 없는 좁은 해안도로를 둘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정해진 탐방로를 벗어나 더 멀고 지루한 길을 걸어 오후 5시께 월전마을에 닿았다. 체력 고갈로 보폭은 현저히 떨어졌다. 새벽 5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12시간, 40㎞를 걸었다. 걸음수로 6만보 조금 모자란다. 내일 여정을 고려해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번갈아 타고 밤8시가 되어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 6시, 개인 차량을 이용해 전날 멈춘 지점에서 다시 여정을 이어갔다. 트레킹 떠나기 전에 "굳이 다 걸을 필요 있느냐" "힘든 구간은 좀 빠트려도 괜찮지 않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았다. 해파랑길 트레킹은 단순한 도보여행의 경계를 넘어 우리 국토에 대한 일종의 순례라고 답하고 싶다. 정성 들인 3000배를 하다가 무릎이 아파 1배를 빠트리게 되면, 2999배가 무위가 되는 것과 다름없다. 오체투지하며 차마고도를 오르는 구도자의 심정으로 단 1m도 두 발이 아닌 방법으로 우리 땅을 거쳐 가고 싶지 않다.
 일광해수욕장을 지나 이동항을 기점으로 탐방로는 다시 바다로 이어진다. 이동마을은 기장 일대에서 규모가 가장 큰 미역·다시마특구. 너른 콘크리트 부둣가에 다시마를 말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방파제 벽면에 설치된 거대한 바둑알과 바둑판이 눈길을 잡는다. 이동마을의 옛 이름은 바둑개. 바둑을 둘 때 쓰는 까만돌이 자갈밭을 이룰 정도로 많아 유래되었는데 오래전 매립으로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고리원전의 돔 4개가 가까워질수록 굽이굽이 해안길을 따라 동백, 신평, 칠암, 문중 등 낯선 지명들이 펼쳐졌다. 풍경도 도심의 색은 옅어지고 동해안 시골 어촌 풍경으로 짙어진다. 대신 해안가를 따라 기업형 카페들이 즐비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 없이 텅텅 비었고 몇몇 카페는 아예 문을 걸어 잠가 놓았다.
 임랑해수욕장 입구에 포스코(옛 포항제철)를 일군 청암 박태준의 기념관이 있다. 1927년 임랑 바닷가에서 태어난 청암은 `제철보국'을 이룩한 입지전적 인물. 기장군은 그의 별세 10주기를 맞춰 생가터에 기념관을 세워 지난 연말 개관했다. 뙤약볕에 달궈진 몸을 식히고 물, 화장실, 휴식도 겸할 수 있어 나그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옅은 구름이 햇살을 차양막처럼 걸러 정오의 바다 풍경은 더없이 나른하다. 손님도 주인도 없는 낡은 민박집은 마치 80년대 흑백사진을 보는 듯 정겹다. 인적 없는 해변에는 외국인 남녀 한 쌍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모래밭에 앉아 가게에서 산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랬다. 문득 예전에 관광 갔던 알프스 몽블랑 정상에서 컵라면을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래나 이유는 알길 없지만, 한국관광객들 사이에서 몽블랑 정상 전망대에서 컵라면 먹기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한국식' 애국심의 일종이었다. 해파랑길 마지막 코스인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부근에 위치한 국토 최북단 명파해수욕장 모래밭에서 언젠가 컵라면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해수욕장을 나오자 고리원전이 눈앞에 다가왔다. 2㎞를 더 걸어 월내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륙도 스카이워크를 출발해 총 18시간, 60여㎞를 걸었다. 해파랑길 4코스는 이곳에서 울주군 진하해수욕장까지 이어지지만, 부산의 갈맷길은 사실상 여기가 종착점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해파랑길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시작점인 셈이다. 김성한 부산남구신문 편집장

이기대 어울마당에서 바라본 해돋이. 천혜절경을 품은 이기대 탐방로는 해파랑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손꼽힌다. 사진=이무현 명예기자(사진작가)
이기대에서 일출 모습을 찍는 필자. 퍌 이기대에서 만난 길고양이 가족. 퍍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해운대 미포항. 퍎 박태준 기념관. 퍏 바닷가에서 오징어를 말리는 풍경. 퍐 해변 백사장의 캔맥주. 퍑 임랑해수욕장의 낡은 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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