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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4/04/ 조   회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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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 자격시험, 1000억원 가치의 보약

이명래
산림치유지도사·중국 한의학 전공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보다 못해"
 기생 출신 김영한이 생을 마감하기 전 백석 시인의 시 구절을 두고 한 말이다. 두 사람은 20대 3년간 사랑을 나누고 운명적으로 별거를 했다. 그 여인은 평생 모은 1000억 원을 법정스님에게 기부한다.
 그 돈보다 더한 시 구절의 나무가 `곧고 정한' 갈매나무다. 남녘에는 귀한 그 나무가 대연수목원 초입에 자리잡고 있었다. 매번 보고도 지나칠 뻔한 나무를 선배 산림치유지도사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 후 1년여가 지나 내 수중에도 그 자격증이 쥐어져 있었다.
 정년퇴임자로서 국가자격증 준비는 마음 같지가 않았다. 주말마다 부산에서 진주로 달려갔다. 전국 산림치유지도사 9개 양성기관이 부울경에는 경상대학교에만 있었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산림자원을 이용하여 치유의 숲,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숲길 등에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거나 지도하는 일을 한다. 1박2일로 138시간의 수업시간을 채웠다. 정작 문제는 수료 후 국가시험을 치러야 한다. 100분에 오지선다형 100문제를 풀어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날듯 했다.
 한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달력을 보았다. `시험을 접을까' 전날 저녁 온갖 번뇌망상으로 잠들었는데 시험 전 12일이라는 숫자가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다. 12일이 이순신의 12척 배로 바뀌어 다가온 것이다. 교재와 문제집을 다시 챙기며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런 다짐도 작심삼일이었다. 그전에 수험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쉽게 이야기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내심 가슴이 뜨끔거렸다. 그때에 방송국 출신 친구로부터 카톡이 울렸다. 톡의 내용보다 바탕 얼굴 아래 적힌 한자 구절이 눈에 꽂힌다. `破斧浸舟(파부침주)' 밥지을 솥을 깨부수고 돌아갈 배마저 가라 앉힌 후 전쟁터로 나선다는 것. 그 동안 몇 척의 배가 남았다며 위로했는데, 그 배마저도 송두리째 없앤 자세가 철퇴로 다가왔다.
 그전에 고헌산 자락 고향집 화잠 어른은 의사로부터 혈액암 선고를 받았다. 자식들의 입원조치로 치료를 받게 됐다. 불과 며칠이 안되어 감옥살이 같은 지겨움에 농사꾼인 이 어른은 병원을 뛰쳐나와 집으로 왔다. 짚꾸러미를 풀어 축사의 소에게 먹이를 주고 아침저녁 들판의 물꼬를 보러 다녔다. 어쩌다 고향길 골목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받는 이 어른은 소문의 암환자라는 기색을 읽을 수 없게 회복이 되었다. 십여년 세월을 더 살다 돌아가셨는데 정작 사인은 일반 노환이었다.
 이렇듯 현대의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유의 현장을 종종 본다. 특히 자연을 통해 중병을 이겨내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한 환자와 의료진, 119직원과 경찰 등을 대상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다. 질세라 숲과 계곡에서 글램핑과 차박이 성황을 이루고 불멍, 숲멍, 물멍, 논멍이 유행이다. 인류가 숲에서 현대도시국가로 나온 지 불과 200여년이다. 숲에 대한 유전자가 피로의 현대사회에 녹색갈증을 더 한 것이다. 우주는 숲을 낳고 숲은 인간을 품었다.
 유럽에서는 지연치유를 의료보험과 연계하고, 일본에서는 산림테라피로 임상의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치료를 넘어 자연 치유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관련법을 제정하였다. 예방차원의 자연치유는 국가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대안이다. 올 초에는 농업자원을 이용한 치유농업사의 1회시험이 있었다. 해양자원을 이용한 치유센터도 설립되었다. 10회 시험을 넘긴 산림치유지도사는 자연치유의 맏형 격이다.
 한편 숲을 공부하다 부산의 나무들이 많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중 천연기념물로 범어사의 등나무군락의 쓰임에 놀랐다.범어사에서는 그 등나무로 종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경전을 베끼는 사경 등으로 절에서 종이를 쓰고 남는 것은 구포장에 가져가 사찰의 생활용품으로 바꿔왔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이 많이 필요해서 돌로 된 물통이 절 입구에 아직도 누워 있다.
 산림치유지도사 준비를 하면서 비대면 교육과 주말 특강으로 주변의 경조사나 모임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과 의리의 갈매나무로 인해 나는 더 깊이 산림치유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그 에너지가 천억의 보약으로 충당될 수 있을까.

황령산 편백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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