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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3/08/ 조   회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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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5억원 아파트
반나절만에 `충동계약'
4억원 대출,
매달 180만원 30년 상환
집값 올라 `성공한 영끌족'
`부동산 방주' 올랐지만
요지경 세상에 씁쓸

 언젠가부터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지더니 이제는 뉴스와 일상대화에서 쉽게 오르내리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나는 직장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급여만으로 생활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재테크나 투자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고 증권사 계좌 하나 개설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수적인 경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가 어쩌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 `영끌족'이 되어 버렸다.
 시작은 2020년 6월로 거슬러간다. 당시 거주하던 오피스텔 월세 계약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알아보던 때였다. 아파트 시세를 검색할 때마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 마음이 다급해졌다. 실제 부동산 매물은 어떤지 파악할 겸 지금의 아내와 함께 주말 데이트 삼아 부동산중개업소로 향했다. 약혼녀의 직장에서 멀지않은 남구의 어느 대단지 신축아파트였다.
 부동산중개인과 함께 저층부터 고층, 20평∼30평대까지 그날 하루 다섯 집을 둘러봤다. 그 중 동 위치, 층수, 내부구조, 재정상태 등에 충족하는 세 집이 있었다. 분양가 대비 집값이 이미 많이 올라있었지만 가격대가 다양해 우리에게도 나름의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 안도했다. 집 구경을 다하고 부동산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그 사이 한 집은 이미 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다. 집을 둘러본지 한 시간 남짓에 불과했는데…. 눈앞에서 `선택지 하나'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도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똑바로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친구에게 조용히 말했다. "집값이 비싸니 전세도 고려해보고, 다음에 다시 오자." 내 말을 들은 그녀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오면 없어, 4번째 그 집을 사자."
 그녀가 말한 4번째 집은 전용면적 59㎡(25평)의 햇볕이 잘 드는 남향이고 특별한 하자가 없어 우리 둘 다 흡족해했다. 하지만 그 날 본 비슷한 평수 중에서 가장 비싸 염두에 두지 않은 곳이었다. 솔직히 5억원대 집값은 매매는커녕 전세도 부담스러웠다. 그런 집을 마치 마트에서 4만원 짜리 `개집'을 사듯 쉬이 "이 집을 사자"는 그녀가 평소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 구석에서도 `다음 기회는 없다'는 그녀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오늘은 선택지 하나를 잃었지만 다음엔 선택지 자체가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결국 뭐에 홀린 듯 가계약을 하고 부동산사무실을 나왔다. 내 집이 생겼다는 안도감은 들었지만 현실감이 없이 구름 위에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개인 사정으로 잔금일을 당겼으면 한다는 집주인의 연락을 받고 머리 위에 먹구름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비록 우리 둘 다 직장이 안정되고 급여 수준은 나쁘지 않지만, 양가 부모님의 지원 없이 신혼집과 혼수, 결혼식 비용까지 모두 준비해야 했기에 4억원의 빚을 내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부모님께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할지 막막했다. 취업 후 첫 자취집을 구할 때에도 평생 빚을 지지 않고 절약하며 살아온 삶을 풀어놓으시며 은행대출을 극구 만류한 분들이다. 이렇게 큰 빚을 내, 그것도 반나절만에 집을 사버렸다는 사실에 어떤 꾸지람을 하실지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연차를 내고 여러 금융기관을 다녀보니 다행히 필요한 만큼 대출은 가능했다. 월 180만원 상환은 부담스럽긴 해도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원금 상환은 어차피 저축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렇게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은행대출금 등 영혼까지 탈탈 털어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고 첫 보금자리에 입성했다.
 그러는 사이 부동산 광풍이 대한민국을 뒤덮었고 우리가 산 집도 가격이 껑충 뛰었다. 가파른 집값 오름세는 전세금 대출 1억원도 만류한 부모님마저 "오르기 전에 잘 샀다"며 칭찬할 정도였다. 그 때 `충동적'으로 계약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계약을 미뤘더라면 조건에 맞는 집은 아예 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하다. 부동산에 한해 세상은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불안과 혼돈의 시기에 다행히 부동산이라는 방주에 승선했지만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이후 집값은 꾸준히 올라 7억원을 정점으로 최근 6억원 후반대에 거래가 되고 있다. 그 덕에 `성공한 영끌족'이라는 주위의 부러움을 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매달 이자 갚느라 허리띠를 죄는 일개미로 부동산 투자 성공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30년 만기 영끌족에서 2년을 채운 우리 부부에게는 감당해야 할 긴 시간이 남아있지만, 매일을 걱정하며 살기 보다는 오늘을 즐기면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빚을 갚아 나가는 만큼 마룻바닥 하나씩, 방 한칸 씩 진짜 내 집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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