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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1/12/07/ 조   회 193
첨부파일
임 현
국회의원 보좌관

길러주신 그 은혜, 저에겐 천륜입니다

 이 세상에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챙기는 것에는 뒷전이고 모든 것을 희생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를 두고 `맹목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부분 부모님께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 이유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 따로 계시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고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6년 전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께서는 나를 앉혀 놓고 "너는 사실 우리가 낳은 친아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 사실을 숨기고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게 생각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처음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40여 년 긴 시간 동안, 나의 출생 비밀을 아무런 내색도 없이 어떻게 꼭꼭 숨겨왔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과 주변의 친척들과는 아예 연락을 끊고 혼자만의 삶을 살았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일이 내게 다가온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동안 쌓아온 나의 삶이 일시에 무너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직장에 나가지 못할 만큼 충격을 받았고, 집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며칠 방구석에 앉아 펑펑 울기도 했다. 10평 남짓 되는 오피스텔 방구석은 소줏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상처를 입은 마음을 추스르고 키워주신 고향 집으로 갔다. 낯선 곳을 가는 것처럼 어색한 마음마저 들었다.
 "왜 저에게 그런 고통을 주셨나요? 왜 그런 시련을 주셨나요?"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아들이다."
 두 분은 나를 진정시키고는 "우리가 죽기 전에 너에게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였다"며 나에게 사실을 알려주려 마음을 잡으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못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최대한 되짚으며 나를 입양하게 된 사연을 얘기해 주셨다.
 1974년, 벚꽃이 저물던 봄이었다고 한다. 당시 두 분은 고향을 떠나 부산 감만동에 정착해 생활하기 시작했고, 가난한 시절이라 판자촌이 밀집한 곳에 거주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는 컨테이너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셨고 어머니는 합판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정착할 무렵, 감만동 모래구찌라 불리던 동네 인근의 미용실에서 나의 친어머니와 외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포대기에 싼 아기를 둘러메고 쪽지와 함께 나를 지금의 부모님께 인계했다고 한다. 당시 쪽지에는 태어난 날로 추정되는 `1974년 1월 27일'이라는 메모지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 나를 키워준 부모님은 1년이 지난 1975년에 늦은 출생신고를 관청에 했고, 지금껏 친자식처럼 성심을 다해 길러주셨다.
 어렴풋이 나의 어린 시절이 필름 끊기듯 기억난다. 당시 판자촌 건물에 단층짜리 세대가 10여 채 모여 있었다. 문짝도 없는 큰 대문에 들어서면 마당 한쪽에 공동 펌프가 자리 잡고 있었고, 뒤편에는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공동화장실이 덩그러니 2∼3칸 놓여 있었다. 집안은 삐거덕 소리가 나는 미닫이문을 열면 연탄 아궁이와 부엌이 있었고, 중문을 열면 3∼4평 남짓한 단칸방 하나에 세식구가 모여 살았다. 부모님은 나를 대학원까지 뒷바라지해 주면서 친자식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돌봐주셨다. 하지만 내 출생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는 게 죄스럽고 부담스러운 나머지 용기를 내어 진실을 알려주셨다.
 나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말과 휴가를 이용해 감만동과 우암동 인근 지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붙이면서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경찰서와 실종 아동기관 등에 의뢰도 하고, 라디오와 지역 신문에 사연을 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쪽지 한 장에 적힌 글귀와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헤어진 부모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작년에 나를 키워주신 아버지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에 대한 원망보다, 살아생전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신 삶을 생각하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나보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홀로되신 어머니의 마음이 더 아프고 힘이 드셨을 것이다.
 흔히들 부모와 자식 간의 피끌림은 천륜이라고 했다. 천륜은 어떤 경우라도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나의 천륜은 나를 훌륭하게 길러준 지금의 부모님이다. 내가 누구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누구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잠시 잊은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되새긴다. 모두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이다. 더도 아니요, 덜도 아니다. 바로 두 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필자인 임현 보좌관의 돌사진·임 보좌관의 혈친(血親) 혹은 출생에 대해 아시는 주민은 부산남구신문 편집실(☎607-4077)로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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