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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 진학을 권유했더니…
작 성 자 소통감사담당관 등록일 2022/01/03/ 조   회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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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칼럼
김성한
부산남구신문 편집장

 "아니, 젊은 애 인생 망칠 일 있어요?"
 몇 해 전의 일이다. 대입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관내 고3수험생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철이 일찍 들었고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더욱이 고향 남구와 부산에 대한 애착도 상당했다.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았기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로의 진학은 떼어 놓은 당상. 그와 그의 부모는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그에게 "그러지 말고 부산대학교나 부경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필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같이 식사하던 일행들이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느냐"며 쏘아붙였다. 뜻밖의 제안에 그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능 만점자가 지방대학에 가는 것이 과연 인생을 망치는 일인지는 지금도 납득 되지 않는다. 이 일이 있고 얼마 뒤 그는 `예정대로' 서울대 교문을 밟았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은 서울을 향한 우리의 열등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국어사전에는 `서울로 간다'는 뜻의 `상경(上京)' `귀경((歸京)'은 있으나, `지방으로 간다'는 단어는 없다. 서울 이외를 뭉뚱그려 `지방'이라 부르는 데서도 깊은 차별이 배어있다.
 하이얀 얼굴과 외모, 복장, 말투 하나하나까지 귀티가 묻어나는 서울서 내려 온 윤 초시네 증손녀와 순박한 시골 소년의 만남을 다룬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묘사되듯 서울은 늘 세련되고 앞서가며 지방은 늘 어리숙하고 투박하다는 식의 이분법이 우리 사회를 수천 년 지배해 왔다. 서울에 대한 뿌리 깊은 동경은 어쩌면 지역 토산물 가운데 최상품을 나랏님에게 바치던 옛 `진상' 문화에서 연유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최고의 진상품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을 터이다.
 통신과 교통의 발전이 서울과 지방의 경계를 낮추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순진하다 못해 사기극에 가까웠다.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자 서울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지방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비대해졌다. 쭉정이가 된 지방에 더는 백약이 무효할 지경이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진학을 권유한 필자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수능 만점이라는 그 놀랍고 특별한 재능은 서울에 발을 들이는 순간 크립토나이트 앞에 선 슈퍼맨처럼 평범해지지 않았을까. 그는 부산도 아닌 그저 경상도에서 온 어느 유학생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총명하고 깨어있기에 분명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남다른 성취를 이룰 것이다. 로스쿨에 진학해 훗날 명망 있는 법조인이 되거나 MZ세대답게 창업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대기업 임원으로 영예롭게 퇴직할 수도 있으리라. 적어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얻는데는 조금의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만일 그때 서울이 아닌 지방을 선택했더라면 그의 미래는 어떠할까. 수능 만점자가 지방에 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서울과 지방을 가르는 철벽에 균열을 내는 상징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학업에 갈증을 느낀다면 시민기금과 시민추천으로 하버드대학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엔들 못 보내주랴. 그런 그에게 주어질 선택지는 판·검사나 대기업 임원보다 더 가치 있고 영향력 있는 미래일 것임은 자명하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진학을 권유한 본질은 경계를 뛰어넘는 리더가 되어 서울과 지방의 벽을 허물어 달라는 당부였다.
 2022학년도 대입수능시험의 성적표가 나왔고 치열한 정시모집 전형이 시작됐다. 서울이라는 좁은 우물이 아닌 더 넓은 세상에 뛰어들 지역 인재의 출현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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