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풍경, 우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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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0~ 1930’s
- 1909. 7.10. 법령 제21호 수출우검역법(輸出牛檢疫法) 실시(1909. 8.20. 시행)
- 1909. 6. 부산 수출우검역소(釜山輸出牛檢疫所) 기공(起工)
- 1909.10.17. 부산 수출우검역소(釜山輸出牛檢疫所) 준공(竣工) 및 개소식(開所式)
- 1910. 8.29. 부산 이출우검역소(釜山移出牛檢疫所)로 명칭 변경
- 1914. 9. 우사 3동 증축
- 1915. 우사 2동 증축(소독소 서측 부지, 총 우사 10동)
- 1916. 검역소 전면 해면 매축 및 우사 6동 증축
(매축지 위 우사 5동, 소독소 일대 우사 1동 증축, 총 우사 16동) - 1918. 해안 돌제 축조, 검역소 사무소 증축, 계류장 정비, 결핵우사 건립
- 1919. 우사 3동 증축(총 우사 19동)
- 1937. 8. 제1기 적기만매축공사(赤崎灣埋築工事) 검역소 전면 해안 매립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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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01940’s
- 1945. 8.15. 광복(미군정청 수립), 이후 검역소 중 일부가 귀환동포의 임시거처로 사용(추정)
- 1945.10.15. 부산가축검역소로 명칭 변경(부산가축검역소장 임명, 한국인 김수현)
- 1948. 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 1949. 6. 6. 부산가축검역소 직제(釜山家畜檢疫所職制, 대통령령 제127호)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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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01950’s
- 1950. 6.25. 6.25전쟁 발발, 부산가축검역소 부지 일부에 판자집, 천막사 등이 건립 되면서 적기 피란민 수용소로 점차 변화
- 1950.12.(이전) 부산가축검역소 총 우사수 13동으로 축소, 사료창고 철거 등 검역소 시설 축소
- 1951. 1. 4. 1.4후퇴 이후 부산으로 많은 피란민이 유입되면서 부산가축검역소의 적기 피란민 수용소가 확대(추정)
- 1951.11. 적기 피란민 수용소 1,280명 수용의 80동의 피란민용 천막사 신축
- 1951.11.27. 화재로 적기 피란민 수용소 19동(129세대) 전소(오후 5시 발화)
- 1951.12.12. 5,000명 수용 규모의 수용소 준공
- 1953. 1. 3. 화재로 건물 110동 전소(150세대, 오전 8시 30분경 발화)
- 1953. 2.19. 화재로 139세대 전소(147호 850명 피해), 동항천주교회 건물 전소
- 1953. 2.(이후) 일렬집 건립(추정)
- 1953년 이후 6.25전쟁 이후 적기 피란민수용소의 피란민 주거는 점차 민간에서 매매가 시작되면서 소막마을이 형성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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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01960’s
- 1962. 2. 부산가축검역소 부산 암남동으로 이전(약 53년간 검역소로서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종료)
- 1963. 우사 주거가 민간에게 불하되기 시작하면서 사유화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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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01970’s ~
- 1970년대 우사 주거 개축의 일반화(벽돌, 블록, 슬레이트 등으로 개량 및 신축)
- 1980년대 이후, 주변 기업의 이전 및 폐업으로 마을 내 거주 인구 감소, 우사 주거의 합병 또는 증ㆍ개축, 철거 및 신축 등이 이루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