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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오지산(봉오리산)| 용당동

용당동에서 용호동으로 뻗어 있는 산맥을 신룡산이라 한다.

보오지산이 현재의 신룡산이라고 보면 된다. 보오지산은 용당의 주산이며 본동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은 용당의 대문으로 인식되어 왔다. 사찰의 해돋이와 보름의 만월도 이산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산의 아래쪽을 대문녘이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보오지산의 유래는 ‘봉화를 지피는 산’, ‘봉화지기가 있는 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주 봉에는 멍석만 한 자리가 있고 봉화를 지피던 화덕터가 해방되는 무렵까지 남아 있었다. 이 화덕 자리에서 전면으로 약 30m 아래쪽에 비스듬히 박힌 바위 아래 두 평 정도의 굴이 있었는데 이곳이 봉수꾼의 숙소였다는 것이다. 봉수대가 폐지된 후 이 굴은 돌보는 사람이 없었으며 자연 매립으로 개구멍 크기로 남아 있다. 일설에는 범이 살고 있었던 범굴이라고도 한다.

경사가 급하고 길이 없어서 겨우 내려가 보니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굴 옆에는 5,6길 정도의 사람 모양 바위가 서서 봉수꾼이 망을 보는 것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랑근(1935년 생) 씨에 따르면 1950년대 초 보오지산을 신성시하여 산허리에 초막을 짓고 요양을 하면서 도를 닦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분은 용당 가래집 김갑인 씨의 차남 김재봉 씨였다. 복막염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외국인이 경영하는 구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 신심(信心)이 강한 모친의 권유로 머리를 깎고 잿빛 염의(染衣)에 염주를 들고 독경을 하면서 소일했다. 이 산의 바른쪽 앞자락에는 김흥만 씨의 밤 밭이 있어 추석을 전후하여 밤이 익으면 서리꾼을 쫓는 소리가 밤 밭에 울리곤 했다.


보오지산 허리에 뱀처럼 차도가 길게 놓인 것은 60년대 이후 동명목재에 의해서였다. 옛날 김재봉 씨의 초막이 있던 앞자락에 지금은 기름 탱크가 앉아 있다. 대문녘 들에는 공장 건물이 들어서고 목재 공장의 긴 굴뚝이 밤낮으로 검은 연기를 토해 놓았다.

출처 :「남구의민속과문화」- 부산남구민속회(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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